"망할 줄 알았는데…" 아마존에 밀리던 美 서점 '반전 드라마' [구은서의 요즘 책방]

입력 2023-02-01 17:07
수정 2023-04-26 11:01

“미안, 챗GPT. 난 아직 이 세상의 중요한 지식은 서점에 남아 있다고 생각해. 인터넷이 아니고.”

지난달 미국 서점 체인 반스 앤드 노블(B&N)의 부활을 다룬 뉴욕타임스(NYT) 칼럼에 이런 독자 댓글이 달렸다. B&N의 가치가 실리콘밸리를 뒤흔들고 있는 대화형 인공지능 챗GPT를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온라인 서점 아마존 등장 후 망해가던 이 오프라인 서점 체인은 어떻게 다시 살아났을까.

1일 NYT 등 외신에 따르면 B&N은 올해 매장 30곳을 새로 열기로 했다. 계획대로 되면 2023년은 B&N의 매장 수가 약 10년 만에 순증하는 해가 된다. 제임스 돈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우리는 이제 이익을 내고, (이로 인해) 다시 매장을 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했다.

1873년 처음 문을 연 B&N은 한때 미국 내 매장만 1000여 곳에 달했다. 책값 할인을 앞세워 동네책방을 위협하는 ‘서점가 골리앗’으로 통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소비자들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매출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9년 행동주의 사모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에 팔릴 당시 매장 수는 600여 곳으로 쪼그라든 상태였다. 2012년부터 7년 연속 매출이 뒷걸음질친 데다 인수 직전 1년 순손실이 1억2500만달러에 달한 탓이다. 경쟁사였던 또 다른 서점 체인 보더스는 2011년 파산했다.

외신들은 B&N의 부활을 이끈 요인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선택과 집중’ ‘큐레이션(책 추천)’ ‘현지화’다.

그동안 B&N은 책이 안 팔리자 ‘벼룩시장’으로 변질됐었다. 우산 물병 같은 잡화를 늘어놨다. 이로 인해 고객들은 원하는 책을 찾기 힘들어졌다.

상황이 바뀐 건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꼽힌 돈트북스 창업자 돈트가 구원투수로 투입된 2019년부터였다. 돈트는 이듬해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을 매장 리모델링 기간으로 활용해 잡화 진열대를 없애고 책 중심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큐레이션 기능도 강화했다. 대형 서점은 보통 눈에 띄는 곳에 책을 진열해주는 조건으로 출판사로부터 돈을 받는다. B&N은 이것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각 매장 직원에게 큐레이션 권한을 줬다.


매장마다 지역의 관심사에 따라 책을 다르게 진열하고, 직원 추천 책에는 손글씨로 짧은 메모를 적어 붙이도록 했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RM이 읽는 책을 모아 진열해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남준의 서재’ 등이 이렇게 탄생했다.

지역 예술가와의 협업도 늘렸다. 북클럽, 전시 등을 통해 서점을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조성했다.

돈트는 “우리는 뜻밖의 행운과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장소가 돼야 한다. 그게 온라인이 따라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