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업계가 전문경영인을 잇달아 영입하고 있다. 부진한 자금시장 상황이 반영됐다는 평가와 함께 ‘교수 출신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투자업계의 부정적인 시각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유틸렉스는 지난해 12월 삼성SDS 부사장을 지낸 유연호 사장을 영입했다. 유 사장은 창업자인 권병세 대표와 공동 대표를 맡는다. 유틸렉스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구조적 혁신과 사업 확대를 위한 노력”이라고 말했다. 유틸렉스는 지금까지 연구자 중심으로 경영진을 꾸려왔다.
메드팩토는 최근 HSBC 출신의 박남철 부사장을 영입했다. 기업금융 전문가인 박 부사장이 해외 사업개발(BD)과 투자유치 업무를 총괄한다. 큐라클은 증권사 출신인 박종현 부사장을 최고재무책임자(CFO)에 앉혔다. 닥터나우는 글로벌 모건스탠리에서 인수합병(M&A) 재무자문 업무를 한 정진웅 이사를 영입했다. 플라즈맵은 보스턴컨설팅 출신의 윤삼정 상무를 데려왔다.
바이오업계가 전문경영인을 끌어들이는 것은 자본시장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자본시장 네트워크를 갖춘 인물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고 했다. 하지만 밑바탕에는 ‘교수 출신 CEO’에 대한 투자업계의 불신과 실망이 깔려 있다는 시각이 많다. 2~3년 전만 해도 연구 성과가 뛰어난 교수의 ‘기획 창업’이 줄을 이었다. 풍부한 유동성을 등에 업고서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기술이전 등 ‘비즈니스 성과’가 부진하면서 투자업계 시각이 바뀌었다. 신약 개발은 R&D가 기본이지만, 임상개발이 진전되면 자금 관리 역량과 글로벌 제약사를 상대로 하는 기술이전 전략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VC) 업계에선 “교수가 CEO로 있는 바이오벤처는 투자하기가 꺼려진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오히려 대기업 출신 연구자가 창업한 바이오벤처가 굵직한 기술수출 성과를 내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 레고켐바이오 알테오젠 등이 대표적이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