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행정법원은 CJ대한통운의 하청 노조가 원청인 CJ대한통운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할 수 있다고 판결하면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2021구합71748 판결).
대상 판결은 실질적 지배력설, 즉 Δ원청과 하청 근로자 사이에 명시적 또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없더라도 Δ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기본적인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한다면 Δ하청 노조는 원청을 상대로 사용자로서 단체교섭에 임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같은 입장에 근거한 2021년 6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중앙 2021부노14)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애초 대상 판결에 앞서 중노위 판정을 취소할 것이라는 예상도 만만치 않았다.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있어서는 실질적 지배력설이 법원의 확립된 견해다. 그래서 원청이 하청 노사관계에 부당하게 개입하면 원청은 사용자로서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원청과 근로관계가 없는 하청 직원들로 구성된 노조가 실질적 지배력설에 따라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권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법원은 부정적 입장을 취해왔다(85누856 판결 등).
그러나 이번 판결은 그 예상을 뒤집었다. 40쪽에 달하는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왜 실질적 지배력설에 따라 원청이 단체교섭에 응해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판결문을 읽으며, 또 대상 판결이 불러온 논의와 파장을 유심히 지켜 보면서 기업을 자문하는 노동변호사로서 자연스럽게 여러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 중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우선, 대상 판결 이후 하청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둘러싼 논란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입법 논의의 장에서, 법원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또 노사 교섭 현장에서 더욱 가열차게 그리고 복잡한 양상으로 의견 대립이 일고 대결 국면이 조성될 것이다.
현재 국회에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에 관한 법률(노동조합법) 개정안 입법이 논의되고 있다. 그리고 개정안 제2조는 사용자를 실질적 지배력설에 따라 정의하고 있다 (‘근로자의 노동조건, 수행업무 또는 노동조합 활동 등에 대하여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거나 보유하고 있는 자’ 등).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시행일 이후에는 하청 노조가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는 다툼의 여지가 없어진다. 대상 판결은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상당한 힘을 실어 줄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현행법 하에서 하청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둘러싼 대립도 심화, 확대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근로계약 관계를 기반으로 단체교섭권이 인정된다는 것이 법원의 주류적 입장이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법원이 실질적 지배력을 매개로 단체교섭권 등 노동 3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꿀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대상 판결이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동종 사건(2018다296229 사건)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주목된다.
이에 더해, 2022년 12월에는 Δ노동안전 등 원청이 실질적인 지배력을 미치는 하청 근로자의 노동조건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되면 단체교섭권은 인정되지만 Δ하청 근로자와 원청 간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이상 하청노조의 원청을 상대로 하는 단체협약 체결권 및 단체행동권은 인정될 수 없다는 중노위 판정까지 내려져 앞으로 법원 판단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중앙 2022부노139). 이로써 하청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3가지 입장이 정립하는 형국이 되었는데, 장차 이들 입장이 수렴되고 정리되는 과정에서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할 때, 하청을 둔 원청 기업은 대상 판결을 하청과의 단체교섭 문제에 대해 더욱 신중한 태세를 갖추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Δ노동조합법 개정안 제2조 입법 추이에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하며 Δ현행법 하에서도 실질적 지배력설에 따라 하청의 단체교섭권이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고 하청 근로자의 노동조건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 인정이 될 여지를 줄이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 점은 불법파견 인정 위험을 피하는 차원에서 강조되어 왔지만, 단체교섭 당사자 인정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도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하청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가 더 빈번해질 것인데, 올바른 대응도 유념해야 한다. 예컨대 그 요구를 거절하는 경우 단순히 근로계약 관계가 없다는 주장에 그칠 것이 아니라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 사실과 함께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한다.
다음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대상 판결의 기본적 접근법이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다. 입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적절한 문제를 '합헌적 법률해석(合憲的 法律解釋)'이라는 미명 하에 법원이 너무 과감하게(?) 해결하려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
대상 판결은 다면적 근로관계 하에서 근로조건에 대해 지배력이나 결정권이 없는 하청에게만 교섭의무를 부담시킬 경우 하청 근로자의 근로3권은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고 전제하고, 따라서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결정할 권한을 갖는 원청을 포함시키는 것이 합헌적 법률해석으로서 타당하다는 구조다. 즉, 노동조합법 제81조 제1항 제3호의 단체교섭 의무가 있는 사용자에 대해 여러 갈래의 해석이 가능할 때 법원으로서는 가능하면 입법권을 존중하여 입법자가 제정한 규범이 존속하고 효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헌법에 합치되는 해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합헌적 법률해석으로 해결될 문제와 입법으로 해결될 문제 사이의 경계는 분명한 것이 아니다. 지금 국회에서 노동조합법 개정이 논의되는 상황 그 자체가 그 점을 보여준다.
또한 합헌적 법률해석은 남용되는 경우 체계 정합성 문제가 야기될 우려가 있다. 하청이 복수이고 하청 근로자들이 가입한 노동조합도 복수인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하청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한다면 이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는 현행 노동조합법이 예상하지 못하던 문제로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 이 밖에 기존에 확립된 노사 관행상 신뢰를 침해하고 사적 자치를 침해할 위험이 커지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지난해 7월 서울행정법원의 다른 재판부(제3부)에서 나온 쏘카 드라이버의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성을 부정한 판결이 취하는 접근 방법을 한번 상기할 필요가 하다(2020구합70229 판결).
이 판결은 Δ플랫폼 노동 종사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포섭하여 보호할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Δ보호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근로기준법상의 사용종속관계가 인정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상 해고 제한 법리를 적용하는 것은 기존 법인격 법리 등에 따른 한계가 존재하며, Δ아울러 공유경제질서의 출현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사적 계약관계를 존중할 필요성도 있다고 한다. 그 결과, 플랫폼 노동 종사자에 대한 계약관계의 일방적 종료 등에 대한 규제는 별도의 입법을 통하여 또는 근로기준법의 개정을 통하여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대상 판결은 근로기준법상의 사용자성이 아니라 노동조합법상의 사용자성 문제를 다루고 있는 등 특수성이 있으니 쏘카 드라이브 판결상 접근방법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Δ직접 근로관계가 없는 당사자의 노동법상 의무 인정 여부가 문제되는 점, Δ체계 적합성, 신뢰 보호, 사적 자치 존중이 문제되며 Δ입법으로 해결할 문제와 사법부가 해결할 문제를 구별해야 하는 점에서 두 사안은 다르지 않다. 쏘카 드라이버 판결의 접근 방법은 하청 노조 단체교섭권에 관한 판단에서도 충분히 참고할만하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