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항상 관심의 대상입니다. 정부 정책과 인허가의 키를 쥐고 있어 그 분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부동산 시장의 방향성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파트 가격 관련 언급은 더욱 그렇습니다.
지난 30일 원 장관과 오 시장이 공교롭게도 부동산 시장 관련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원 장관은 "부동산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한 인위적인 대책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언론에 나온 주요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거래량이나 가격 자체를 겨냥해서 정책을 쓰는 순간 부작용이 너무 많이 발생한다. 거래량이 일부 회복되는 건 당연한 결과라고 보지만 가격이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직접적으로 추가적인 거래 (활성화) 정책을 쓰겠다는 접근은 하지 않겠다. 서민들이 일시적인 고비를 못 넘겨서 지나친 피해를 보거나 금융발 실물경제 경착륙을 막기 위한 미세조정은 해 나가겠지만 거래량과 가격 때문에 고통 지수가 높아진다고 해서 직접적인 처방을 하는 건 가급적 지양하려고 한다. 올해 상반기 경기가 어떻게 갈지 변수가 너무 많아서 (경기가) 더 하강하는 상황도 염두에 두겠지만 부동산 거래 자체에 대한 안전벨트 역할을 하는 부분은 이미 정책을 펼치고 있고 그 이상으로 거래를 활성화하고 거래를 떠받치는 접근은 안 할 것이다."
인위적으로 가격 하락을 막는 정책과 거래 활성화 정책을 쓰지 않겠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또 거래 (정상화) 정책을 지금 펼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31일 나온 지난달 신규 아파트 미분양과 기존 아파트 거래량을 보면 부동산 시장 상황이 꽤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8107가구로 한 달 전(5만8027가구)에 비해 1만80가구(17.4%) 증가했습니다. 작년 연초 1만7700가구와 비교하면 1년 새 5만가구가량 늘어난 셈입니다.
주택 매매량도 살펴볼까요. 지난해 12월 전국 주택 거래량은 2만8603건으로 1년 전(5만3774건)에 비해 46.8% 줄었습니다. 지난해 전체 거래량은 50만8790건으로 1년 전(101만5171건)보다 49.9% 감소했습니다.
시장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입니다. 최근 몇 년간 주택 가격 급등, 기준 금리 인상과 경기 둔화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부동산은 심리"라는 말이 있는데 수요 자체가 사라지다시피한 상황입니다.
정부는 시장 기능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필요한 거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합니다. 직장 이동이나 새 아파트 입주 등으로 집을 팔아야 할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필수 이주 수요가 거래하는데 걸림돌(규제)이 있으면 당연히 없애야 하는 게 정부의 역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장관의 거래와 가격에 대한 언급은 다소 성급한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장 기능 회복을 위해서는 계속해서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조치는 언제든 취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가격 급등과 급락이 여러 문제를 초래하는 만큼 가격 안정을 위한 노력도 당연히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 시장이 간담회에서 밝힌 부동산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주거 비용은 국제기준으로 제일 높다. 높은 부동산 가격이 양극화 해소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부동산값이 폭등하면 강남은 더 올라서 양극화가 심화하고, 전·월세 등 주거비용 상승으로 경제 선순환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주거비가 높으면 다른 가처분 소득 부분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동산(가격)은 낮을수록 좋다. 안정적 하향 추세를 지속적으로 유지·관리해 이른바 부동산 가격 연착륙을 통해 문재인 정부 초기 정도까지 되돌아가야 한다.”
높은 부동산 가격이 사회적으로 자산 양극화를 더 심화했다는 측면은 수긍이 갑니다. 하지만 가격이 문재인 정부 초기 정도까지 떨어져야 한다는 언급은 시장의 불안을 더 부추기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듭니다. 내 집 마련을 꿈꿔온 사람이 오 시장 발언을 듣고 청약을 연기할 수도 있습니다. 당장 거래를 앞둔 사람이 계약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서울시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시장이 아파트 가격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시나 구 공무원들이 분양가 선정이나 인허가 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격은 서울시장이 정하는 게 아닙니다. 수급에 따른 거래 행위를 통해 자연스럽게 정해집니다. 고위 공직자는 부동산과 같은 민감한 이슈를 언급할 때 꼭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