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이었다. 도쿄특파원 시절 가와무라 다카시 전 히타치 회장을 인터뷰했다.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이 롤모델로 꼽은 히타치의 부활을 이끈 인물이다. 위기의 히타치호(號)를 구한 ‘최후의 남자(라스트 맨)’로 불렸다. 그가 취임하기 직전인 2008회계연도 히타치는 7800억엔(당시 10조200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일본 제조업 사상 최대 적자였다. 2013년부턴 3년 연속 최대 영업이익을 냈다. 2021년에는 사상 최대인 5834억엔의 순이익을 올렸다. 가와무라가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갈 당시 히라이 가즈오 전 소니 사장은 몰락한 ‘소니 왕국’을 이끌고 있었다. 2011년 소니는 4550억엔 순손실을 냈다. 그가 사장에 오른 2012년에도 4년 연속 적자의 수렁에 빠졌다. 하지만 6년 만에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냈고 2021년엔 영업이익 ‘1조엔 벽’을 넘었다. 일본 기업 중 도요타에 이어 두 번째였다. 위기는 사업 개편의 기회난데없이 이들을 소환한 건 국내 기업들이 10여 년 전 히타치, 소니와 비슷한 위기에 직면해서다. 이들은 일본 내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문경영인 중 최고의 기업인으로 꼽힌다. 재임 시기에 차이는 있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위기를 사업 개편의 기회로 삼았다. 가와무라는 5년간 30여 건의 인수합병(M&A)을 했다. 그 기준은 잘할 수 있는지 없는지였다. 히타치는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사회 인프라 중심의 B2B(기업 간 거래) 업체로 탈바꿈했다. 히라이는 사내 반발에도 ‘VAIO’ 브랜드로 유명한 PC사업부를 팔고 TV사업부를 재편했다. 소니 성공 신화의 상징인 미국 뉴욕 맨해튼의 사옥 ‘550 매디슨’도 매각했다. 그러면서 게임·음악·영화 사업에 집중했고 전자·반도체 사업의 경쟁력을 높였다.
변방에 있다가 사장에 올랐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 덕분에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과감한 구조조정이 가능했다. 가와무라가 사장에 복귀한 건 히타치 부사장을 끝으로 계열사로 떠난 지 6년 만이었다. 자회사를 돌며 히타치의 문제점도 깨달았다. 거대한 ‘공룡’에겐 신속한 전략 수립과 빠른 결단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히라이 역시 전자 중심의 소니에서 게임과 음악 부문 등 비주류에서 주로 일했다. 자신도 저서 <소니 턴어라운드>에서 “주류에서 비켜나 이단아로 인생을 살아온 게 내 리더십의 바탕이 됐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박수칠 때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난 점도 같다. 가와무라는 2014년 초 자리에서 물러났다. 통상 사장 재임기간이 8~10년 정도인 일본에서는 의외였다. 히라이는 재임 6년 만에 은퇴를 결정했다. 겨우 58세의 나이였다. 한국판 히라이를 기대한다연초부터 ‘위기의 사이렌’이 울리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은 -0.4%를 기록했다. 2년 반 만에 역성장이다. 적자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기업 심리도 꽁꽁 얼어붙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는 83.1로, 2년6개월 만의 최저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위기는 또 하나의 기회였다. 총수들의 올 신년사에도 이런 말이 여러 번 등장했다. 기업 흥망성쇠는 위기를 기회로 살린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에 따라 갈렸다. 한국판 가와무라와 히라이의 등장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