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을 수개월째 돌려주지 않는 빌라왕 등 상당수 임대인이 청년 주거복지를 위해 정부가 만든 ‘중소기업취업청년 전월세자금대출’(중기청 대출)도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가 지원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한국주택금융공사(HF)가 보증하는 이 대출은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청년을 대상으로 전세금을 대출해주는 제도다. 지원 한도는 1억원으로 대출금리는 연 1.2%다. 대상은 만 19~34세 이하의 무주택 청년 중 연소득이 3500만원 이하인 중소·중견기업에 재직하거나 청년 창업 지원을 받는 경우다. 보증금 2억원 이하·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에 한해 신청할 수 있다.
대출받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한국주택금융공사 전세대출보증으로 보증금의 80%까지 혹은 주택도시보증공사 전세금안심대출보증으로 전액을 대출받는 방식이다. 예컨대 전세 2억원짜리 주택을 계약하는 경우 중기청 대출을 통해 1억원을 받아 이자로 월 10만원(1.2%)을 내면 된다. 전세금 차액 1억원은 본인이 마련해야 한다.
갭투자로 주택을 대거 사들인 악성 임대인들은 시세 하락과 거래 부진 등으로 임차보증금을 주지 못하자 이 제도로 돌려막기를 했다. 서울 영등포구 오피스텔 세입자 권모씨(28)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지난해 8월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났음에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권씨는 몇 달간 이사하지 못하다가 중기청 대출을 받아 한 여성 세입자가 새로 들어온 뒤에야 전세금을 찾았다. 집주인은 수도권 일대 빌라 수십 채를 보유한 공무원으로 알려졌다. 권씨는 “당장 보증금을 반환할 능력도 없는 매물을 대상으로 정부가 중기청 대출까지 내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임대인의 ‘폭탄 돌리기’ 수명만 더 늘려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오유림 기자 ou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