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 '뷰티 공룡'들이 장악하던 뷰티시장에서 최근 중소 화장품업체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오프라인 점포를 중심으로 한 화장품 구매가 주를 이룬 만큼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이 유리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온라인 채널이 주요 판로로 자리잡으면서 톡톡 튀는 마케팅·브랜딩을 앞세운 중소업체들이 뷰티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부상했다. 중소업체가 소규모 자본만으로 선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들 제품의 제조를 맡고 있는 화장품 ODM(제조업자 개발생산)사들의 생산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코로나19 이후 '인디브랜드' 고객 폭증 2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표 화장품 ODM사인 코스맥스와 한국콜마에 화장품 제조를 위탁한 고객 수가 코로나19 이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인 2019년 600여 개였던 코스맥스의 고객사는 지난해 800여 개가 됐다. 3년 새 고객이 30% 가량 늘어난 것이다.
코스맥스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별도의 오프라인 매장이 없는, 온라인 전용 인디 브랜드들이 늘어났다"며 "신규 고객사의 대다수가 이같은 인디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주요 ODM사인 한국콜마의 지난해 3분기 보고서에 명시된 고객사 수는 900여 개인데, 이는 2년전 보고서에 나온 수치(600여 개)의 150% 수준이다.
이들 ODM사는 일반인의 화장품 사업 진출을 돕는 맞춤형 솔루션도 운영하고 있다. 화장품 사업의 진입장벽이 대폭 낮아진 것이다. 한국콜마는 지난 2020년 6월부터 뷰티·헬스 프로덕션 플랫폼 '플래닛(PLANIT)147'을 운영하고 있다. 이종 업계는 물론 일반인들도 화장품·건강기능식품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사업 솔루션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코스맥스도 원스톱 화장품 개발 온라인 플랫폼인 '코스맥스 플러스'를 지난해 1월 론칭했다.
고객사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들 ODM사의 매출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콜마의 지난해 매출액 컨센서스는 1조8700억원대, 코스맥스는 1조6000억원대로 양사 모두 역대 최고 수준이다. ◆ODM으로 품질 보장...'다품종 소량생산' 흐름 주도 중소 화장품 업체들의 제품이 소구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ODM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으로 품질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중소 업체의 아이디어와 ODM사의 기술력이 더해지면서 뷰티 시장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다양한 수요에 대응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는 브랜드보다는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자들의 수요와도 맞아 떨어졌다. 균일가 생활용품점인 다이소에서만 유통되는 화장품 브랜드 '식물원'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첫 출시된 식물원은 '네이처리퍼블릭'이 다이소 전용으로 기획한 브랜드로, 코스맥스에서 제조한다. 다이소에 입점한 만큼 아무리 비싸도 5000원을 넘지 않으면서 2030 사이에서 '가성비 화장품'으로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모았다.
업계 관계자는 "마케팅이 참신해도 결국 제품의 성패는 '품질'이 좌우하는데, ODM으로 생산하면 어느 정도의 품질은 보장된다"이라며 "요즘에는 ODM으로 1000~2000개 수준의 적은 물량도 찍어낼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이들 중소업체들은 화장품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다. 올리브영에 입점한 브랜드 중 지난해 처음으로 연매출 100억원을 돌파한 브랜드는 총 21개인데, 이 중 19개가 중소업체의 브랜드일 정도다. 해외시장에서도 성과를 내는 중이다.
해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올리브영의 '글로벌몰'에 입점한 중소업체 브랜드들이 세자리수에 달하는 매출 신장률을 기록했다. 스킨케어 브랜드 '토리든'의 경우 지난해 기준 204%의 신장률을 보였고, 색조 전문 브랜드 '롬앤'의 매출도 114% 증가했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