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트랜스젠더 환자의 병실 입원 과정에서 법적 성별만을 기준으로 병실을 배정하는 것은 평등 원칙에 반한다며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고 26일 밝혔다.
인권위에 따르면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한 트랜스젠더 A씨는 2021년 10월 약물 알레르기로 B대학 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4일간 입원하려 했으나 남성 병실에 입원해야 한다고 안내받았다. 주민등록상 성별이 남성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A씨는 호르몬 요법을 받았으나 성전환수술과 법적 성별 정정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A씨는 병원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B대학 병원 측은 "의료법상 입원실은 남녀를 구분해 운영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그 기준으로 법적 성별을 따르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2021년 A씨 외에 두 명의 트랜스젠더 환자가 입원했는데 모두 본인 부담으로 1인실을 이용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보건복지부 역시 트랜스젠더의 병실 입원과 관련한 별도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을 두지 않고 있으며, 의료법 시행규칙 제35조의2 제2호에 '입원실은 남·여 별로 구별하여 운영할 것'이라고만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A씨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보고 트랜스젠더의 의료기관 이용과 관련한 별도 지침이 필요하다는 권고를 내렸다.
트랜스젠더가 법적으로 부여된 성별과 본인이 느끼고 표현하는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인데도, 법적 성별만을 기준으로 이분법적인 범주에 포함하려 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조치라고 판단한 것이다.
인권위는 "의료기관이 입원 환자를 특정 기준에 따라 구분해 병실을 배정하는 건 불가피하나 이런 기준만으로 구분이 어렵거나 남·여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사람 또한 존재한다"며 "법적 성별만을 기준으로 남녀라는 이분법적 범주에 포함하려 하는 건 '다른 건 다르게 처우해야 한다'는 평등 처우의 기본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인권위는 지난해 3월 국가승인통계조사에 성 소수자 관련 항목을 신설하라고 관련 정부 부처에 권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