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출간된 추리소설 <다빈치 코드>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움직이지 마시오.” 냉기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원문은 이렇다. ‘A voice spoke, chillingly close. “Do not move.”’ 이를 제대로 번역하면 ‘소름이 끼칠 만큼 가까이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꼼짝 마!”’ 정도가 된다.
최근 <번역가의 길>을 펴낸 김욱동 서강대 영문학부 명예교수(75·사진)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저 문장은 짧고 간단하지만 학부 수준의 영문학 전공생도 우리말로 매끄럽게 옮기기 어려운 문장”이라며 “영어 잘하는 사람이 늘고 번역 기술이 발전해도 번역은 여전히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고 말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F 스콧 피츠제럴드, 마크 트웨인 등 옛 미국 소설을 꽤 읽었다는 사람치고 김 교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는 영문학자이자 번역가로 <노인과 바다> <위대한 개츠비> <허클베리 핀의 모험> <앵무새 죽이기> 등 3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번역인가 반역인가> <번역과 한국 근대> <번역의 미로> 등 번역 이론서도 여럿 썼다. 2013년 정년 퇴임 후 거처를 부산으로 옮겼지만 여전히 연구와 저술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번역가의 길>은 이전에 쓴 학술적인 번역 이론서와 달리 일반 대중을 위한 책이다. 그는 “서강대와 한국외국어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장래 희망이 전문 번역가라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미래의 번역가들에게 주는 일종의 우정 어린 충고로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인공지능(AI) 번역이 장족의 발전을 했지만 미묘한 감정을 다루는 문학 번역에서만큼은 아직 숙련된 인간 번역을 따라갈 수 없다”고 했다. 앞서 예로 든 <다빈치 코드> 속 문장을 구글은 ‘차갑게 가까운 목소리가 말했다. “이동하지 않습니다”’라고 번역했다. 네이버 파파고는 ‘목소리가 오싹할 정도로 가까이에서 말했다. “움직이지 마”’로 옮겼다. 김 교수는 “구글보다 네이버가 잘 번역했지만 이것도 완벽하지 않다”며 “목소리가 말한 게 아니라 누군가가 말한 것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완벽한 번역이란 없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 중 가장 유명한 문장인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은 흔히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구나’로 번역한다. 하지만 번역자에 따라 ‘사느냐’를 앞에 두기도 하고, ‘문제다’라고 끝내기도 한다. 심지어 ‘존재냐, 비존재냐’라고 번역한 이도 있었다.
김 교수는 “미묘한 뉘앙스를 완벽하게 옮길 수 없기 때문에 번역가는 항상 차선(次善)을 노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예컨대 한국어의 ‘눈치’는 영어의 ‘센스(sense)’나 일본어의 ‘기즈쿠(付く)’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번역을 잘하려면 남들이 번역한 것을 많이 봐야 합니다. 왜 이렇게 번역했을까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죠. 책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많은 단어를 알수록 좋은 번역이 나옵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