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광 기자
코로나 탓에 최근 3년간 해외여행 하는 게 너무 어려웠는데, 요즘은 많이들 나가시는 것 같아요. 올여름에는 억눌렸던 해외여행 수요가 폭발하면서 역대급으로 많이 나갈 것이란 전망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외여행이 많아지면 어떤 회사가 제일 돈 많이 벌 것 같은가요? 여행사 또는 항공사. 근데, 지금 언급할 회사는 돈 버는 차원이 달라요. 돈을 쓸어 담습니다. 한때 ‘황금알 낳는 사업’ 이런 표현을 쓰기도 할 정도였죠.이번 주제는 황금알 낳을 준비 중인 호텔신라입니다.
호텔신라는 모르는 사람이 없죠. 서울 남산에 있는 한국 최고의 호텔이고. 제주도에 가면 다들 한 번씩 예약해 볼까 하다가, 가격 보고선 차마 예약은 못 하는.
호텔신라는 과거 박정희 정부 때 외국 귀빈이 오면 모시는 '영빈관'으로 썼던 곳을 삼성이 인수하면서 시작된 회사인데요.
삼성생명, 삼성전자 이런 삼성 계열사들이 현재 지분 17%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경영은 '재 드래곤',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동생인 이부진 사장이 하고 있죠.
갑자기 든 생각인데 회사 이름을 왜 신라호텔이 아니라 호텔신라로 지은 지 잘 모르겠어요. 삼성은 계열사들 이름을 삼성전자, 삼성생명 이런 식으로 삼성을 앞에 쓰고 그 뒤에 전자, 생명처럼 무슨 사업 하는지 넣는데. 신라를 앞세우기 싫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호텔롯데도 이름이 그런데 당시 트렌드였나 싶기도 해요. 누구 아시는 분 있으면 댓글 달아주세요.
어쨌든 호텔신라는 이름하고 다르게 호텔은 부업이죠. 매출만 보면요. 이 회사 전체 매출 가운데 호텔 사업 비중은 10% 수준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면세점으로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면세점을 주력으로 하는 호텔신라는 코로나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겪었어요. 코로나 직전인 2019년에연 매출이 5조원을 넘겼는데 2020년, 그리고 2021년 각각 3조원 수준에 머물렀고, 영업이익은 2020년 대규모 적자, 2021년에는 예년의 절반도 안 되는 1000억원 수준.
작년에는 회복이 좀 됐는데, 이건 면세점보다는 호텔이 잘 됐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해외에 잘 못 나가니까 ‘차라리 한국에서 제일 좋은 호텔로 여행 가자’, 그래서 서울 신라호텔, 제주 신라호텔 이런데 장사가 엄청나게 잘 됐대요. 매출의 10%밖에 안 되는 호텔 사업이 이익의 70%를 책임져 줬습니다.
객실 투숙률이 80% 정도만 되면 거의 만실인데요. 엄청 비싼 펜트하우스나 스위트 룸 빼고 방이 다 찬 것이죠. 제주 신라호텔은 작년 내내 80% 안팎까지 투숙률이 올랐고, 서울 신라호텔도 3분기에 역대 최대 수준인 68% 수준까지 올랐어요.
좀 싼 호텔인데 신라 브랜드 달고 있는 신라스테이는 83%였으니까, 없어서 방을 못 팔았다 이렇게 표현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호텔이 잘되고 있는 상황에서 면세점까지 잘 되면 호텔신라는 대박이 터지는 것인데요. 면세점이 진짜로 잘 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선 내국인, 그러니까 우리 국민이 해외로 나가는 출국자 수가 작년 11월에 100만명을 넘겼어요. 코로나 사태 이후에 한 달 출국자 수가 100만명을 넘긴 것은 처음이었어요.
코로나 이전만 해도 한 달에 많게는 300만명 가까이도 나갔는데, 코로나가 터진 뒤에 10만명 수준으로 확 쪼그라들었죠. 그런데, 올여름부터 빠르게 늘기 시작하더니 100만을 넘긴 겁니다. 주변에 해외 출장, 해외여행 가시는 분들 쉽게 볼 수 있죠.
호텔신라 면세점의 내국인 매출은 코로나 이후에 사실상 없다 이렇게 보면 될 정도로 미미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20% 안팎 했고요. 내국인, 그러니까 우리 국민들이 해외에 나가기 시작하면 당연히 면세품 구매가 늘겠죠. 요즘 여권 신청하러 가면 줄을 엄청나게 선다고 합니다. 해외여행 계획이 있으시면 여권부터 빨리 만드셔야 할 것 같아요.
우리만 해외로 나가는 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도 한국에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작년 10월 외국인 관광객은 약 48만명까지 늘었는데요, 코로나 직후에 이 수치는 2만에서 3만명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100만명 이상 됐는데, 그래도 많이 회복했네요.
사실 호텔신라 입장에선 내국인 보다는 외국인, 그중에서도 면세점의 큰 손인 중국인 관광객이 느는 게 좋은데요. 아직까진 중국인보다는 미국, 일본 관광객이 더 많기는 합니다. 미국, 일본 사람들은 면세품 잘 안 삽니다. 그냥 백화점이나 아울렛 가서 사죠.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포기하고 요즘 막아 놨던 해외여행을 점차 풀고 있어서 앞으로는 많이 들어오겠죠. 중국 관광객은 올봄 이후에 급격히 많아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중국에서 코로나가 극심해서 우리도 중국 분들 오는 게 조금 부담이 되는 상황이죠.
작년 11월 이후부터 외국인 투자자들이 호텔신라 주식을 사 모으고 있는데, 아마도 면세 사업의 기대감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작년에 실적을 방어해 준 호텔 사업도 기대가 크죠. 호텔은 매출이 상대적으로 면세점에 비해 작다고는 해도 성장 가능성은 더 클 수 있어요. 요즘 호텔신라는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위탁경영, 그러니까 남에게 신라 이름을 쓰게 해주고 경영도 대신해주는 식으로 간판을 늘리고 있어요. 2021년 문을 연 신라스테이 서부산점이 국내에선 첫 사례였습니다.
이건 브랜드 파워가 없으면 불가능한데요, 놀라운 것은 베트남 다낭 같은 세계적인 휴양지나 미국 캘리포니아 등 호텔 선진국에서도 신라 브랜드를 달겠다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메리어트, 힐튼 이런 글로벌 호텔 체인도 대부분 이런 식으로 사업을 확장해서 커졌어요. 위탁경영은 호텔 짓느라 큰돈 들일 필요가 없어서 순식간에 호텔 수를 늘릴 수 있습니다.신라는 이제서야 첫걸음을 뗐는데 코로나가 풀려서 해외여행이 활성화되면 호텔신라에 위탁경영해주세요, 하고 요청하는 사례가 많아질 것 같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호텔신라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 같지만 넘어야 할 산도 물론 있어요. 우선 면세점 사업이 옛날만큼 잘 될지 의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여행 제한이 풀려서 과거처럼 해외 관광객이 많이 들어 온다고 해도 면세품을 엄청나게 살까. 잘 모르겠어요.
호텔신라뿐만 아니라 한국 면세점을 그동안 먹여 살린 것은 사실은 중국인들인데요. 중국인들이 한국 화장품을 너무 좋아해서 중국인 패키지 관광객들이 면세점 화장품을 다 쓸어 갔습니다. 중국보다 싸고 좋으니까. 중국은 짝퉁도 많아서.
관광객으로는 부족해서 따이궁이라 불리는 보따리상이 등장해서 화장품을 엄청 사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팔아서 돈을 벌었습니다.
이게 요즘은 주객이 전도돼서 한국 면세점 매출의 무려 90% 이상을 따이궁이 올려 줍니다. 왜, 공항 가면 화장품 포장 벗기고 알맹이만 따로 담으시는 분들 있잖아요. 무슨 일하듯 몇백개씩. 그분들이 따이궁이에요. 중국 사람들이 관광을 못 오니까 따이궁이 대신 사서 중국에 물건을 공급해요.
그러니까, 화장품 회사에서 호텔신라 같은 한국 면세점에 물건을 주면, 이 물건을 중국 보따리상에 팔고, 보따리상이 중국 내 일반 소비자에게 파는 게 하나의 산업처럼 형성이 됐어요. 한국 면세점이 중국에 도매 사업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코로나 때 한국 면세점이 그나마 버틴 것도 이 따이궁들이 매출을 올려줘서였어요.
이게 마약 같아서 면세점들이 끊지를 못하고 도리어 따이궁 유치하려고 경쟁적으로 돈을 썼는데, 일종의 리베이트 같은 것이죠. 어감이 안 좋아서 면세점은 송객 수수료라고 불러요. 어쨌든 송객 수수료가 호텔신라 한 곳만 작년에 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이 됩니다. 매출의 30~40%를 송객 수수료로 쓰고 있어요.
이렇게 장사하고 적자를 안 내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죠. 정상은 아니에요. 중국 정부도 이걸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규제하더니 지금은 한국 면세점 가서 돈 쓰지 말고, 하이난 같은 데 가서 써라. 하이난은 한국으로 치면 제주도 같은 곳이죠. 여기에 엄청난 면세점들을 지어서 면세점 수요를 자국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중국 면세점 CDFG란 곳이 코로나 터진 이후에 한국을 제치고 세계 1위 면세점으로 올라섰는데 다 이유가 있어요.
또 하나가 중국인들이 과거처럼 한국 화장품을 좋아할 것인지가 의문인데요.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2019년 1만달러를 넘어선 뒤에 소비가 급격히 양극화되고 있습니다.
화장품은 로레알, 랑콤 같은 유럽 브랜드 아니면 아예 자국 브랜드를 선호하는 현상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어요. 예를 들면, 중국에선 11월 11일 1이 네 개가 들어간 날을 독신자의 날이라고 해서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처럼 대대적인 할인 행사를 여는데. 작년 독신자의 날 때 가장 많이 팔린 화장품 브랜드 순위에서 한국 제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2019년에만 해도 LG생활건강의 후가 5위였고,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가 8위였는데 다 10위권 밖으로 밀렸죠. 그 자리를 위노나, 프로야 같은 중국 토종 브랜드가 차지했습니다.
중국이 요즘 대놓고 한국을 디스하는 것도 부담이죠. 중국 정부가 최근에 한국인에 대한 비자 단기 발급을 중단하고 자국민에 대한 차별적인 방역 규제를 강도 높게 비판했는데요. 과거 사드 보복 때처럼 중국에서 대대적인 반한 감정이 생길 우려도 있습니다.
사드 보복 당시에 롯데, 신세계 같은 한국 유통 회사들이 전부 중국에서 철수했고 현대자동차 판매도 그때부터 급감해서 지금은 거의 안 팔리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런 일 없이 잘 넘어갔으면 좋겠어요.
호텔신라를 이끄는 이부진 사장은 부친인 이건희 회장을 형제들 가운데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하는데요. 이건희 회장 때 삼성이 반도체, 휴대폰 사업을 일으켜서 일본 IT 기업들 다 이기고 지금의 삼성을 일궜듯이 이부진 사장도 호텔 위탁경영, 그리고 면세점 사업을 잘 키우기를 기원합니다.
한국이 제조 아니고, 서비스 산업에서 1등 하는 게 거의 없는데 면세점, 호텔이 1등 하면 좋겠어요.호텔신라, 코로나 봉쇄가 끝나고 진짜 확 뜰지 눈여겨보겠어.
기획 한경코리아마켓
총괄 조성근 부국장
진행 안재광 기자
편집 박지혜·예수아·이하진 PD
촬영 박지혜·예수아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제작 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