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이 오는 4월 이후 수익률곡선제어정책(YCC) 정책을 폐기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국내에서도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25일 "한국은 일본계 자금 유입 규모 및 엔화 자금 거래 규모가 크지 않아 일본계 자금의 본국 환류는 제한적일 것"이라면서도 "향후 한국에는 환율 및 자본 유출입에 직·간접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엔 캐리 트레이드란 금리가 낮은 일본에서 돈을 조달해 수익률이 높은 해외 국가에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좁은 의미에서 일본계 자금을 차입해 이뤄진 투자뿐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일본인의 해외 투자까지 해당한다. 일본은행이 지난해 12월 일본 국채 수익률 상한선을 기존 0.25%에서 0.5%로 올리는 등 사실상의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각국에 투자된 엔화 자금이 청산될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엔 캐리 트레이드가 세계적으로 정확히 어느 정도 규모로 이뤄지고 있는지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돈에 꼬리표가 달린 게 아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엔 캐리 트레이드를 통해 투자된 자금은 전 세계 3조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절반은 미국에 투자돼 있다고 한다.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한국에 얼마나 유입됐는지 역시 알 수가 없다. 이른바 '와타나베 부인'(일본인 개인 투자자)이 한국 주식에 투자한 규모는 파악된다. 금융감독원의 외국인 증권투자 동향에 따르면 일본인이 보유한 한국 상장주식은 지난해 12월 기준 12조3910억원(결제 기준)에 달한다. 와타나베 부인은 지난해 한국 주식을 2530억원 순매수했지만, 지난해 11월(-4050억원)과 12월(-610억원) 두 달 연속 순매도로 돌아섰다.
시장에서는 오는 4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퇴임한 뒤 일본은행이 YCC 정책을 폐기하는 등 긴축으로 돌아서면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이란 예상이 제기된다. 하지만 일본의 금리는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 워낙 낮기 때문에 당분간은 금리 격차가 좁아지더라도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으로 곧장 이어지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김용준 국제금융센터 시장모니터링본부장은 "YCC 조정 이후 엔화 국채금리 상승으로 주요 통화들과의 금리 격차가 일부 축소되었으나 종전에 운용 중인 신흥 통화 등 여타 고금리 자산을 청산하고 새롭게 엔화 자산에 투자할 만한 매력이 있다고 보기에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향후 엔화가 급격히 강세를 보일 경우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환차손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한은은 "YCC 정책 변경에 따른 일본 장기금리의 상승은 거주자의 해외 투자자금 환류 및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등을 통해 엔화의 강세와 글로벌 장기금리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일간 금리차 축소 시 글로벌 채권시장의 주요 투자자인 일본계 자금의 본국 환류가 증가하면서 엔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 YCC 정책 추가 변경 기대와 함께 엔화 강세가 지속될 경우 엔 캐리 트레이드를 포함한 엔화 매도 포지션의 청산이 가시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한은은 일본계 자금의 급격한 유출 등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외화 대출 용도 제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업의 엔화 차입 규모가 크게 축소됐기 때문이다. 또 한국에 대한 일본인 개인 투자 규모도 주요국과 비교하면 크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전체 외국인의 주식 투자 가운데 일본인이 비중은 2.1%에 불과하다. 미국(40.8%), 영국(8.6%), 싱가포르(6.9%) 등과 비교해도 낮다.
다만 앞으로 일본은행의 정책 변화로 예상치 못한 쇼크가 나타나면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외국인 자금의 유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은은 "향후 일본은행의 정책 방향에 대한 기대 변화와 이에 따른 일본 국내외 금융시장 반응 등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가운데 국내 자본 유출입 및 환율 움직임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