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당권주자로 거론됐던 나경원 전 의원이 25일 3·8 전당대회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유력 당권주자로 꼽히던 나 전 의원의 불출마로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는 김기현 의원과 안철수 의원의 '양강 구도'로 치러질 전망이다. 나경원, 당대표 선거 불출마…"용감하게 내려놓겠다"나 전 의원은 이날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나 전 의원은 "어렵게 만든 정권의 성공을 위한 길은 무엇일지, 총선 승리는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지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며 "우리 당의 분열과 혼란에 대해 국민적 우려를 막고 화합과 단결로 돌아올 수 있다면 저는 용감하게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선당후사(先黨後私) 인중유화(忍中有和) 정신으로 국민 모두와 당원 동지들이 이루고자 하는 꿈과 비전을 찾아 새로운 미래와 연대의 긴 여정을 떠나려고 한다"며 "국민의힘이 더 잘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영원한 당원의 사명을 다하고, 건강한 국민의힘,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기원하겠다"고 덧붙였다."黨 사랑하는 마음에 그만두기로…특정 후보 지지 안 해"
나 전 의원은 '불출마를 결정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솔로몬 재판의 진짜 엄마 같은 심정이었다"며 "결국 제 출마가 분열의 프레임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당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만두기로 결정했다"고 답했다.
'장관급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내려놓는 과정에서 대통령실과 갈등하는 측면이 있었다'는 질문에 그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비상근직이었고, 기후환경 대사는 무보수 명예직이었다"고 즉답을 피했다. 나 의원은 "이에 따라 여러 다른 직을 겸할 수 있었고, 당원으로서 역할을 같이 해야만 하는 그런 위치에 있었다"고 부연했다.
특정 후보를 지지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도 밝혔다. '김기현 의원과 안철수 의원의 양강전이 예상되는데,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도울 계획이 있냐'는 물음에 그는 "저는 불출마를 어느 후보라든지, 다른 세력의 요구라든지, 압박에 의해 결정한 게 아니다. 당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정했고, 앞으로 전당대회에 있어서 제가 역할을 할 공간은 없으며, 역할을 할 생각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최근 일부 당대표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낮아진 게 불출마에 영향을 미쳤냐'는 질문에는 그는 "전당대회 출마할 때도, 접을 때도 마찬가지로 지지율의 좋고 나쁨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출마해서 선거 캠페인을 벌인다면 지지율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과정에서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이 다시 연출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출마를 접었다"고 했다. "출마로 얻을 거 없어, 잘된 일" vs "국민 평가 짊어져야"
당내에서는 나 전 의원의 불출마를 두고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나 전 의원 비판 성명에 이름을 올렸던 한 초선 의원은 한경닷컴과 통화에서 "나 전 의원을 옆에서 지켜보고 교류한 입장에서 이번 당대표 출마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봤다"며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나 전 의원 입장에선 불출마까지 빚어진 일련의 사태들로 인해 화가 났을 수도 있는데, 화풀이하듯 출마 결정을 했다면 보기 좋지 않았을 것이다. 당 입장에서도 나 전 의원의 불출마는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비윤(비윤석열)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나 전 의원이 고심 끝에 스스로 결정한 부분이라, 그 결정에 대한 국민의 평가에 대해서도 스스로 짊어져야 할 부분"이라고 사실상 아쉬움을 드러냈다. 나 전 의원의 출마를 점쳐온 한 국민의힘 관계자도 "사실상 '친윤(친윤석열)계'의 집단린치로 인해 떨어져 나간 게 아니겠냐"고 아쉬움을 표했다.
앞서 나 전 의원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지난 5일 자녀 수에 따라 대출금을 탕감·면제하는 헝가리식 정책을 언급한 후 대통령실과 갈등을 빚었다. 이후 친윤계 의원들에 연이은 비판에 나 전 의원은 결국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으나, 윤 대통령은 나 전 의원을 해임했다.
이후 나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의 해임 결정과 관련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대통령의 본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가 또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나서 "나 전 의원 해임은 대통령의 정확한 진상 파악에 따른 결정"이라고 정면 비판했다. 나 전 의원은 결국 사과문을 내 사태 진화에 나섰다. 나경원 하차에 與 전당대회 '양강구도'
나 전 의원의 불출마로 3·8 전당대회는 사실상 김기현·안철수 의원 간 양자 대결로 치러질 전망이다.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나 전 의원의 지지층을 누가 최대한 흡수하느냐에 따라 차기 당권이 갈릴 전망이다.
김기현 의원 측은 당의 전통적 지지층이 안철수 의원이 아닌 본인들에게 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 의원과 손을 잡은 장제원 의원이 나 전 의원과 공개적으로 대립각을 세운 만큼, 친윤계 의원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당원들의 표가 안 의원에게 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의원과 안 의원은 당심을 둘러싸고 접전을 벌이는 분위기다. 엠브레인퍼블릭이 YTN 의뢰로 지난 22~23일 전국 18세 이상 2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 784명에게 차기 당대표 적합도를 물어 이날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김 의원 25.4%, 안 의원은 22.3%로 집계됐다. 두 후보 간 격차는 3.1%로 오차범위 내였다. 나 전 의원은 16.9%로 조사됐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도입된 결선투표를 가정해 '가상 양자 대결'도 진행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안 의원 49.8% 대 김 의원 39.4%으로, 안 의원이 오차범위 밖에서 김 의원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유무선(유선 19.5%·무선 80.5%) 임의전화걸기(RDD) 방식으로 실시했다. 응답률은 7.7%,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19%포인트(국민의힘 지지층 95% 신뢰수준, ±3.5%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