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V)’가 ‘슈퍼컴퓨터’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의 6박8일 해외 순방 기간 복수의 참모로부터 이런 얘기를 전해 들었다. 브이(V)는 참모들이 윤 대통령을 지칭하는 용어다. 거의 모든 국정 사안에 대한 이해도가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로 꾸려진 참모를 앞서고 있다는 취지다.
이번 순방 성과를 보더라도 상당수는 윤 대통령 ‘개인기’에서 비롯된 측면이 많다. 열사의 나라 아랍에미리트(UAE) 현지에서 300억달러(약 40조원) 규모 투자 유치 성과를 전해 들었을 땐 순방에 동행한 기자와 참모들도 감격에 겨워했다.
다보스포럼이 열린 스위스에서 내로라하는 국내외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오찬 행사를 하면서 “저는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다. 한국 시장도, 제 사무실도 열려 있으니 언제든지 찾아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할 땐 자부심도 느꼈다.
이런 역대급 성과들이 외교 활동과 무관한 여러 논란에 뒤덮이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 외교가는 “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문제가 됐다. UAE 현지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국군 장병을 격려하기 위한 발언이라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이란 양국이 주재 대사를 초치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정치권에선 순방 직전부터 대통령실과 나경원 전 의원이 공개적으로 공방을 벌였다.
돌이켜보면 윤 대통령의 순방이 매번 이랬다. 첫 해외 순방인 스페인에선 민간인 신분의 이원모 인사비서관의 부인 신모씨가 1호기에 동승한 사실이 논란이 됐다. 두 번째인 뉴욕에선 대통령의 ‘바이든’ 발언이 모든 순방 성과를 삼켰다. 지난해 11월 동남아시아 순방 당시엔 출국 이틀 전 결정한 ‘MBC 기자 1호기 탑승 거부’ 사건이 온 국민 밥상에 올랐다.
대통령실 안팎에선 홍보 라인의 잦은 교체도 문제라는 지적이 흘러나온다. 최영범 홍보수석, 강인선 대변인, 김영태 소통관장(현 대외협력비서관), 우모 선임행정관 등 핵심 라인 참모들이 대통령실을 떠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책임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한다”는 윤 대통령 철학에 맞지 않는 인사도 많았다. 바닥 민심과 맞지 않는 대통령 생각이나 발언에 대해 직언하는 참모들이 점점 사라지는 이유다.
해외 순방의 본질과 동떨어진 사안이 전체 결과를 흐리고 있는 문제는 가볍게 보고 지나쳐선 안 된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