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비서실장, 국무총리, 경제부총리가 모두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임명되면서 바야흐로 '모피아(MoFia) 전성시대'가 열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모피아는 현 기재부와 금융위원회의 전신(前身)이었던 옛 재무부(Ministry of Finance)에 마피아(Mafia)를 합성한 것으로 고위 경제·금융 관료 출신을 통칭하는 표현입니다.
실제 모피아의 '본산' 격인 기재부, 금융위 외에도 국무총리실, 보건복지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주요 부처 역시 모피아 출신들이 속속 요직을 꿰차면서 대통령의 친정인 검찰 출신과 더불어 현 정부 인사의 양대 축으로 자리잡았지요.
가뜩이나 모피아들의 입김이 강한 금융권 인사에서도 이 같은 풍경이 재현될 것이라는 전망은 삼척동자도 할 수 있는 당연한 추론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이런 예상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전통적으로 기재부의 '나와바리(영역)'으로 여겨졌던 수출입은행에는 사상 첫 내부 공채 출신인 윤희성 행장이 선임됐고 문재인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던 윤종원 전 기업은행장의 후임에도 내부 인사인 김성태 수석부행장(전무)이 낙점을 받았지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BNK금융그룹 차기 회장에도 모피아 등을 모두 제치고 빈대인 전 부산은행장이 지난 19일 내정됐습니다. 지금까지 새 정부 출범 이후 이뤄진 주요 민간 금융회사 인사에서 수장에 오른 모피아 출신은 이석준 NH농협금융그룹 회장이 거의 유일한 상황입니다.
당초 휘황찬란하게 날아오를 듯했던 모피아의 날개가 이처럼 꺾이고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금융권에선 모피아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검찰 출신의 견제가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물론 그 중심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실제 이 원장은 금융권 인사에 대해 잇따라 공개 발언을 내놓으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11월 금융위에서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에게 '라임 사태' 관련 중징계가 내려진 직후 "(손 회장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며 사실상 사퇴를 압박했고 이는 마침내 지난 18일 손 회장의 연임 포기 선언으로 이어졌지요.
BNK금융그룹 차기 회장 인선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달에도 "(BNK) 롱리스트(1차 후보군)에 있는 후보 중 오래된 인사라든가 정치적 편향성이 있거나, 과거 다른 금융기관에서 문제를 일으켜 논란이 됐던 인사가 포함돼 있다면 사외이사들이 알아서 걸러주지 않을까 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물론 일각에선 이 원장의 이 같은 공개 훈수가 그동안 암막 뒤에서 은밀하게 이뤄져온 관치 금융보다 차라리 낫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또 이 원장은 한 전직 경제·금융 관료를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에 앉히려던 모피아에 맞서 직을 걸고 소신을 관철하는 등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요.
그럼에도 그 역시 금융권에 속속 안착 중인 검찰 출신 낙하산 인사들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어 결국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어느 정부든 대통령과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들이 주요 공직에 임명되는 것은 순리이자 민주주의 원칙에도 부합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민간 기업인 금융회사 인사에 관 출신 특정 세력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시장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지요.
문재인 정부에서도 전문성이 부족한 정치권 인사를 금융권에 낙하산으로 내려보냈다가 적지 않은 논란을 빚은 바 있습니다. 금융권에 정부의 영(令)이 바로 서려고 해도 최소한 인사에 관해 스스로 떳떳해야만 가능하지 않을까요. 부디 윤석열 정부가 전임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끝)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