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머리를 바짝 깎았다. 이제 막 입대한 훈련병 같은 ‘까까머리’는 “달라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행운의 본선 진출자로 ‘럭키 루저’로 불렸던 그에겐 ‘슈퍼 포핸드’라는 새로운 별명이 붙었다. 한국 최초로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에서 두 번째 우승을 거머쥔 권순우(26·세계랭킹 84위·사진) 얘기다.
권순우는 14일(현지시간)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열린 ATP 투어 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 2차 대회 결승에서 세계랭킹 26위 로베르토 바티스타 아굿(34·스페인)을 2시간42분 접전 끝에 세트 스코어 2-1로 꺾고 우승했다. 2021년 9월 아스타나오픈에서 첫 우승을 한 뒤 1년4개월 만에 거둔 투어 통산 2승이다. 한국 테니스의 전설 이형택과 정현도 이루지 못한 기록이다.
권순우는 2021년 첫 우승으로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이후 지독한 ‘2회전 징크스’에 시달렸다. 같은 해 10월 파리바오픈 1회전부터 지난해 9월 코리아오픈까지 단식 2회전을 한번도 넘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 10월 세계랭킹 100위권 밖으로 밀렸다.
이번 대회에서는 행운의 여신이 그를 도왔다. 이번에도 예선 2차전에서 패하며 탈락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몇몇 참가자가 본선에 불참하면서 ‘러키 루저’로 합류했다. 징크스가 깨지자 거침없이 질주했다. 16강전에서 세계랭킹 15위 파블로 케라뇨 부스타(31·스페인)를 잡는 이변도 일으켰다.
권순우는 이제 메이저대회에 도전한다. 16일 열리는 호주오픈이다. 관건은 방전된 체력의 회복이다. 이번 대회의 예선부터 매주 경기를 치렀기 때문이다. 권순우는 “메이저 본선을 뛰는 선수라면 경기력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회복을 잘하면 어려운 경기라도 잘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