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이 ‘황사영 백서 사건’에 연루돼 형 약전과 함께 전라도에 유배된 것은 1801년(신유년). 11월 22일 나주 율정에서 약전과 헤어진 뒤 이튿날 강진에 도착했으나 거처를 구하지 못했다. 집집마다 문을 닫고 만나주지 않아서였다. 동문 밖 노파의 주막집 골방에 겨우 짐을 푼 다산은 주막집의 당호(堂號)를 사의재(四宜齋)라고 지었다. ‘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네 가지란 ‘생각은 맑게, 용모는 단정하게, 말은 적게, 행동은 무겁게’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참모와 장관 등을 지낸 사람들이 정책연구포럼 ‘사의재’를 오는 18일 꾸린다는 소식이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정부의 정책 성과를 평가, 성찰함으로써 정책 대안을 마련하고 집권 역량을 강화한다는 게 이들이 밝힌 창립 배경이다. 실제로는 문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에 대응하고 친문(친문재인)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 위한 것으로 비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이 사의재라는 이름을 붙인 건 뜬금없다. 다산은 유학의 본령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이며 수기란 안으로 자신을 닦는 공부, 치인이란 안으로 온축된 도(道)를 밖으로 펴는 경세제민(經世濟民·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의 공부라고 했다. ‘경제’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그의 학문과 삶에서 백성을 위한 현실 개혁과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목민심서> <경세유표>를 통해 치국의 도와 민생 대책을 밝히고, ‘기예론(技藝論)’을 통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설파한 것도 그래서다. 다산은 백공(百工·온갖 종류의 장인)의 기예가 정교해지면 나라가 부유해지고 군대가 강해지며, 백성들이 넉넉히 오래 살 수 있다고 했다.
문 정부 인사들이 다산의 이런 사상을 제 것인 양 끌어다 붙이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소득주도성장론을 앞세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부동산 정책 실패로 국민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줬고, 탈원전 정책으로 한국전력에 엄청난 적자를 안겼다.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다산의 빛나는 정신을 이제라도 본받겠다면 반가운 일이지만, 아무래도 그럴 낌새는 없어 보인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