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작년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세가 14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하면서 국내 증시에 훈풍이 불고 있다. 올 들어 코스피지수가 8일 연속 상승세를 보인 가운데, 물가 정점에 따른 국내외 통화정책 변화 기대가 커지면서 국내 증시가 바닥을 찍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높은 금리 수준이 상당 기간 지속되면서 경기침체 및 기업 실적 악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여전해 아직 약세장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결국 향후 지수 반등폭은 경기침체와 기업 실적 악화 정도에 따라 판가름 날 것으로 예상된다. “증시 바닥 왔다”
13일 코스피지수는 0.89% 오른 2386.09에 마감했다. 지난 4일 이후 8거래일 연속 상승하면서 2400선도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 12월 CPI 상승폭이 14개월 만에 최저치인 6.5%로 예상치에 부합하면서 투자심리가 크게 되살아났다는 분석이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5714억원, 기관은 2126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개인은 7777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지난달 1조6156억원을 순매도했지만, 새해 들어선 반도체 업황개선 전망 등에 힘입어 이날까지 2조7062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상당수 전문가는 “증시가 예상보다 빨리 바닥을 쳤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까지 증권사들은 올해 증시가 상반기까지 약세를 보이다 하반기 반등하는 ‘상저하고’가 될 것이란 견해를 내놨다. 그러나 물가 상승세가 둔화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미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 인상을 올 상반기 안으로 끝낼 것이란 기대가 한층 커졌고, 증시 반등 기대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의 ‘매파적 발언’에도 최근 증시가 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도 증시가 바닥을 찍었다는 견해를 뒷받침하는 이유로 꼽힌다. 파월 의장은 10일 릭스뱅크 국제심포지엄에서 “물가안정을 위해 모든 일을 다하겠다”며 긴축 의지를 재차 밝혔다. 그럼에도 S&P500지수는 최근 5일간 4.18% 오르며 순항하고 있다.
정명지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파월 의장이 연내 금리를 내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유가 하락과 물가 상승세 둔화 등을 고려하면 금리를 인하할 명분은 이미 충분해졌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의 실적 부진도 증시에 다수 선반영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승현 유안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기업 실적은 작년 4분기, 늦어도 올해 1분기가 바닥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증시가 경기를 6개월 정도 앞선다는 걸 고려하면 한국 증시는 이미 이런 상황을 반영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어닝쇼크 우려가 변수”여전히 높은 물가 수준을 고려하면 증시가 아직 약세장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미국 12월 근원 서비스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5.7%, 전월보다 0.3%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임혜윤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상품물가는 하락했지만 서비스 물가의 상승 압력이 높다는 점에서 Fed가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은 작다”고 지적했다.
높은 기준금리가 장기간 유지되면 글로벌 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이는 다시 올 1분기 기업 실적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분기 국내 상장사 103곳의 영업이익 합산액은 전년 대비 43.5% 감소한 23조350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적 분석상으로 장기 추세선인 200일 이동평균선이 여전히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어 약세장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기업 실적이 중국 경기에 따라 회복 시점이 달라질 수 있는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며 “상승장보다는 지수 하락 압력이 약해지는 상태에서 횡보세가 이어지는 박스권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배태웅/심성미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