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반도체에 이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까지 빠르게 냉각되고 있다. 대만 UMC 등 세계 3~5위권 파운드리 업체의 실적이 눈에 띄게 둔화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 1위 TSMC마저 올해 설비투자를 전년 대비 최대 12% 줄이기로 했다. 삼성전자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중장기 투자는 유지하지만 신속·탄력적으로 수요에 대응한다’는 방침에 따라 올해 파운드리 설비투자가 전년 대비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만 UMC 가동률도 90%로 떨어져
13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TSMC는 지난 12일 열린 실적설명회에서 올해 시설투자 목표액을 320억~360억달러로 제시했다. 지난해(363억달러)보다 시설투자액을 최대 11.8% 줄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TSMC의 시설투자액은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증가했다.
올해 1분기 매출 가이던스(회사가 제시한 공식 전망치)도 기대치보다 적었다. TSMC는 올해 1분기에 167억~175억달러의 매출을 거둘 것이라고 밝혔다.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 179억달러를 밑도는 수치다.
다른 대만 파운드리 업체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세계 3위 파운드리 업체 UMC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은 전 분기 대비 10% 감소했다. 지난해 초 100%에 육박했던 공장 가동률도 90% 수준으로 떨어졌다. UMC의 올해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1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후공정 업체의 사정도 좋지 않다. 세계 1위 후공정 업체 대만 ASE의 지난달 매출은 전월은 물론 전년 동기와 비교해서도 11% 줄었다. 스마트폰 칩 만드는 공정 가동률 하락파운드리 기업들의 보수적인 움직임은 경기침체 영향으로 분석된다. 세계적으로 스마트폰과 PC 소비가 위축되면서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요가 줄었다. 미디어텍, AMD, 엔비디아 같은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들이 위탁생산을 맡기는 수량을 조절하면서 파운드리 업체들의 실적도 된서리를 맞았다.
스마트폰, PC용 고성능 칩을 생산하는 TSMC의 N6, N7 공정 가동률이 떨어진 게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C.C 웨이 TSMC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스마트폰과 PC에 대한 시장 수요가 더욱 약화되면서 N7, N6의 가동률이 3개월 전 예상보다 낮아졌다”며 “올해 상반기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TV 시장 위축은 중저가 디스플레이칩을 생산하는 5위권 이하 파운드리 업체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대만 VIS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5%, 전 분기 대비 28% 급감했다. DB하이텍 같은 국내 파운드리 업체 상황도 비슷하다. 업계 관계자는 “TV용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재고가 넘쳐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업계에선 올해 하반기에 파운드리 시장이 살아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웨이 CEO는 “하반기엔 인공지능(AI) 등의 기술 발전으로 반도체 시장이 반등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도 파운드리 시설투자 줄일 듯삼성전자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공장을 먼저 짓고 나중에 장비를 투입하는 ‘셸 퍼스트’ 전략을 수립해 실행에 옮기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중장기 성장성을 크게 보고 있어서다.
하지만 단기 투자 전략과 관련해선 ‘수요에 신속·탄력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올해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투자가 2020년, 2021년 수준인 12조원 안팎에 그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