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가 북한에서 살해된 이후 국방부와 국가정보원에서 피격 사실을 숨기기 위해 관련 자료를 삭제하는 일사불란한 작업이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공소장에 따르면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은 피격 이튿날인 2020년 9월 23일 제1차 안보관계장관회의를 마치고 합참 작전본부 작전부장에게 “강도 높은 작전보안을 유지해야 한다. 자료가 외부로 일체 유출돼서는 안 되니 관련 자료를 모두 수거해 파기하고, 이 사건을 알고 있는 인원 전원을 상대로 보안교육을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이런 지시에 따라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MIMS·밈스) 내 첩보 60건, 18개 부대 정보 유통망 체계에 등재됐던 첩보 보고서 5417건이 밤샘 작업 끝에 삭제됐다. 이 과정에서 첩보 원음 파일 등도 손상됐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역시 회의 종료 후 복귀한 뒤 공관에서 노은채 전 국정원 비서실장에게 “9월 22일부터 수집한 첩보 및 관련 자료를 즉시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노 전 실장은 이날 오전 9시30~50분 회의를 소집해 국정원 차장과 기조실장 등에게 “우선 서해 표류 아국인 사살 첩보 관련 자료는 군 첩보 담당부대에서도 배포를 중단하고 모두 삭제하기로 했다”며 “원내 첩보 관련 자료도 모두 회수해 삭제 조치를 하고, 관련 내용은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라”고 했다. 이런 지시에 따라 국정원에서는 관련 첩보와 보고서 등 55건이 삭제됐다.
검찰은 이씨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어려워지자, 국가안보실 지시를 받아 이씨를 자진 월북자로 몰아가는 월북 조작을 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박 전 원장과 서 전 장관이 직원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판단하고, 직권남용 및 공용전자기록 손상 등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종전선언’ 등의 내용이 담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유엔 연설을 앞둔 상황에서 정부 책임론이 불거질 것을 우려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