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두 아버지 죽음을 맞은 일본…30년 혼돈이 시작됐다

입력 2023-01-12 11:13
수정 2023-01-12 11:18


헤이세이(平成) 원년인 1989년, 일본은 두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했다. 소련의 몰락으로 인한 마르크스주의의 종언이고, 다른 하나는 히로히토 일왕의 사망이었다. 좌와 우의 상징적인 아버지들을 잃은 일본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일본인들은 마음속 ‘모범’을 잃고, 지식인은 신뢰를 상실하고, 경제는 침체 속으로 빠져들었다.

일본의 역사학자 요하나 준은 〈헤이세이사〉를 통해 1989년부터 2019년 사이의 현대 일본 역사를 조명한다. 이 기간은 아키히토 일왕의 재위 기간으로 헤이세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전쟁 직후 베이비붐(1947~1949년) 때 태어난 세대, ‘단카이 세대’가 사회 주류가 된 시대다. 저자는 이 시기의 정치, 경제, 사상, 문화 등의 각도로 되돌아본다.

1989년 참의원 선거 직후 우노 소스케 총리가 헤이세이 시대 첫 총리로 선출됐다. 그는 자민당 사상 첫 파벌 영수가 아닌 총리였다. 파벌을 이끄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아이’인 채 나타나 대중적인 주목을 받는 스타가 됐다. 저자는 이후에 주목받은 총리 3명(하시모토 류타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도 비슷한 모습이었다고 전한다.

헤이세이 전반 1990년대, 정체성의 상실에 빠진 일본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애니메이션 ‘세기 에반게리온’의 폭발적인 열풍이었다. 일본에서 사회현상으로 떠오른 이 애니메이션은 중학생인 주인공의 어두운 심리, 기독교와 이교도의 대립 등을 주제로 삼았다.

저자는 헤이세이 시대를 관통하는 주요 사건으로 1995년 옴진리교의 테러, 2003년 이라크전쟁 자위대 파견, 2009년 비자민당 정권으로의 교체 등을 꼽는다. 무엇보다 헤이세이 23년(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후쿠시마 대지진과 쓰나미는 일본을 전후 대혼돈 시대처럼 되돌려 놨다.

아베가 이끄는 자민당은 2012년 역사적인 압승을 차지했다. 국민들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아베노믹스’를 지지했다. ‘잃어버린 20년’ 헤이세이의 정체에서 벗어나자고 외쳤다. 하지만 전후 고도성장을 되찾으려는 시도는 한계가 명확했다.

저자는 딱딱한 학술서의 필체가 아닌 소설과 같은 인문서의 형태로 사건들을 서술해 간다. 이 책은 ‘전후’도 ‘역사’도 사라져버린 일본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지식인의 생각을 엿보며 현재 일본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최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