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WB)이 올해 세계 경제가 1%대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각국의 인플레이션과 통화·재정 긴축 여파에 따라 선진국을 중심으로 경기 침체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다. 선진국 성장률 2.2→0.5%
세계은행은 10일(현지시간)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1.7%(시장환율 기준)로 전망했다. 지난해 6월 올해 성장률을 3.0%로 제시했던 것에 비해 1.3%포인트 낮췄다. 1.7%는 최근 30년간 성장률 전망치 중 가장 낮은 수준에 속한다. 코로나19가 덮친 2020년(-3.2%)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9년(-1.3%) 역성장한 것에 이어 세 번째로 낮다.
세계은행이 경제성장률을 집계해 발표하기 시작한 1961년 이후로 범위를 확장해도 세계 경제가 올해 전망치보다 덜 성장한 것은 1991년(1.5%), 1982년(0.4%), 1975년(0.6%)뿐이다. 세계은행은 “미국, 유럽, 중국 등 주요국 성장세가 잠재성장률 수준을 큰 폭으로 밑돌고 있다”며 “2020년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경기침체에 재진입할 위험이 증대됐다”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와 관련, “세계은행 전망이 현실화한다면 최근 10년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두 차례 경기침체를 겪는 시기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국가별로 보면 선진국의 성장률 전망치가 2.2%에서 0.5%로 크게 낮아졌다. 고물가와 재정·통화 긴축, 에너지 공급 불안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영향을 주면서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경제 악화 흐름이 이어질 것이란 예측이다. 미국은 올해 0.5%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종전 전망보다 1.9%포인트 하향됐다. 유로존 성장률 전망치는 1.9%에서 0.0%로 조정됐다. 올해 사실상 성장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별도로 발표되지 않았다.
신흥국·개발도상국은 0.8%포인트 하향 조정된 3.4%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됐다. 선진국의 성장 둔화 영향으로 외부수요 약화 등이 우려되지만 중국의 국경봉쇄 완화 등이 일부 감소세를 상쇄할 것으로 전망됐다. “지속적인 투자로 성장해야”경기침체 우려 신호는 최근 들어 더 강해지는 모습이다. 지난해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경제가 2.7%(구매력 기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약 40일 후인 11월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전망치를 이보다 낮은 2.2%로 발표했다. 이날 세계은행 전망치도 구매력 기준으로 환산하면 OECD와 같은 수준이다.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는 “경기 둔화가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광범위한 침체로 전 세계 소득 증가 속도가 코로나19 이전 10년 동안보다 더 느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금리 인상에 나선 미국 등 선진국이 빠른 속도로 세계 자본을 빨아들여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채무 부담이 커지고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며 “이들은 앞으로 수년간 저성장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변수는 중국 경제의 반등 여부다. 맬패스 총재는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빠르게 코로나19를 극복한다면 긍정적인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며 “중국은 홀로 글로벌 수요와 공급을 끌어올릴 만큼 충분히 큰 나라”라고 말했다. 세계은행은 또 각국의 패배주의를 경계했다.
맬패스 총재는 “비록 세계가 궁지에 몰렸지만 패배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며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국경 간 무역 개선, 에너지 접근성 증가에 대한 투자가 세계 경제가 직면한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강진규/박주연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