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규제 지역 해제와 청약·대출·세금 규제를 대폭 완화한 ‘1·3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서울 아파트 매매 시장에선 관망세가 이어지고 있다. 추가 금리 인상과 실물경제 위축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급매물을 제외하곤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등 매도자와 매수자 간 ‘눈치 보기’ 장세가 지속되고 있다.
청약 시장에서도 입지와 가격에서 경쟁력이 있는 단지에만 수요자가 몰리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에 대한 불확실성이 걷히기 전까진 주택 매수 수요가 되살아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도·강’ 아파트 매물 되레 늘어
11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물은 이날 기준 5만1347건으로, 1·3 대책이 발표된 지난 3일(4만9774건)보다 3.1% 늘었다. 특히 1·3 대책의 최대 수혜지로 꼽힌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에서도 매물 증가세가 완연했다. 이 기간 노원구 매물은 3.1%, 도봉구는 2.5% 늘었다.
도봉구 창동 A공인 관계자는 “대책 발표 직후 매수 문의가 늘긴 했지만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급매물이 아니면 수요자가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고 했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대출 규제 완화로 돈을 빌리긴 쉬워졌지만 대출이자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돼 일부 실수요자와 현금 여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선뜻 주택 구입에 나서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도·강을 비롯해 20·30대 ‘영끌족’이 중저가 아파트를 집중적으로 사들인 강북권에선 급매물만 가끔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노원구 상계동 은빛1단지 전용면적 59㎡는 9일 이전 최고가(6억3500만원)보다 2억원 가까이 내린 4억5000만원에 팔렸다. 동대문구에서도 답십리동 래미안위브 전용 84㎡가 5일 최고가(15억5000만원)보다 6억원 넘게 하락한 9억4000만원에 거래되며 심리적 저항선으로 통하는 10억원이 무너졌다.
상계동 B공인 관계자는 “집주인은 집값이 바닥을 쳤을 것이란 기대 때문에 호가를 못 내리고, 매수자는 가격이 여전히 높다는 생각에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라며 “매도자와 매수자 간 가격 차이로 당분간은 거래가 뜸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청약시장 온도 차 더 커질 듯1·3 대책으로 전매 제한이나 실거주 의무가 사라진 청약 시장에선 선호도가 높은 주거지와 분양가가 저렴한 단지에만 수요자가 몰리는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지방 곳곳에서 발생한 무더기 미분양 사태가 서울 외곽 지역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애초 업계에서 초기 계약률을 40%대로 점쳤던 서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은 수분양자에 대한 중도금 대출 허용으로 이달 17일까지 진행되는 정당 계약에서 계약률이 70~80%까지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전날 1순위 청약을 접수한 경기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평촌센텀퍼스트는 1150가구 모집에 257명만 신청해 미달됐다. 호계동 C공인 관계자는 “가뜩이나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 분양가도 주변 시세보다 높아 청약자로부터 외면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올림픽파크포레온처럼 강남권에 속한 대단지 아파트는 경기 회복기에 가격이 먼저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며 “집값 하락으로 분양권 매매 차익도 줄어든 만큼 급매물을 노리는 게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헌형/이혜인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