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또다시 연금 개혁 카드를 들고나왔다. 그는 2017년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연금 개혁을 주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노동계의 대규모 반발과 사회적 진통이 예상된다. 이 때문에 개혁 방안이 의회 문턱을 통과할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라는 전망이 나온다.연금 수령 시기 늦추기로
엘리자베트 보른 프랑스 총리는 10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어 구체적인 연금제도 개혁 방안을 발표한다. 현지 텔레비지옹 방송 등에 따르면 개혁안 초안에는 연금 수급 최소 연령을 현행 62세에서 2027년까지 63세, 2030년까지 64세로 상향하는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정부 계획대로 올해 상반기가 끝나기 전 개혁안을 시행한다면 1964년 이후 태어난 사람은 지금보다 1년, 1968년 이후 태어난 사람은 2년을 더 일해야 한다. 현재 연금을 100% 받기 위해선 42년간 일해야 하는데, 이를 2035년까지 점진적으로 43년으로 연장하는 방안도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연금 수급 최저 연령을 높이는 대신 정부는 최소 연금 상한액을 현행 최저임금의 75%, 월 1015유로(약 135만원)에서 최저임금의 85%인 월 1200유로(약 160만원)로 인상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올리비에 베랑 정부 대변인은 “납입 부담금을 올리거나 연금 수령액을 깎지 않고 수지 균형을 맞추는 게 이번 개혁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현재 프랑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적연금 지출 비중은 15%에 가깝다. 이는 상대적으로 방만한 재정 운영을 하는 것으로 분류되는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와 맞먹는 수준이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재집권에 성공한 마크롱 대통령에게는 이번 개혁이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첫 번째 임기(2017~2022년) 때도 직종별로 42개에 달하는 연금제도를 단순화하는 개편을 추진했다. 그러나 2019년 12월 총파업에 직면해 무산됐다. 여당인 르네상스당 소속 마크 페라치 하의원은 “이번 개혁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레임덕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노동계 강력 반발 예고향후 진행 과정은 첩첩산중일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노동계 저항이 거세다. 온건 성향의 노동자단체인 노동민주동맹(CFDT)의 로랑 베르제 사무총장은 “은퇴 연령이 늦춰지는 걸 받아들일 수 없기에 우리는 노동자들을 동원해 맞서겠다”고 말했다. 주요 노조는 정부가 정년 연장 방침을 밝히는 즉시 파리에서 만나 시위를 열 날짜를 정하기로 했다.
호의적이지 않은 여론도 마크롱 대통령이 넘어야 할 산이다. 프랑스 여론조사기관 오독사가 지난 4~5일 성인 10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4%가 퇴직 연령을 62세로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한 프랑스인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연금 수급 최소 연령에 초점을 맞춘 마크롱식 연금 개혁은 고용 시장에 늦게 진입하는 고학력자들에게 유리하고, 일찍 일을 시작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불리한 ‘개악’”이라고 말했다.
현재 하원 의석수도 마크롱 대통령에게 불리하다. 르네상스를 포함한 범여권은 하원 의석 577석 중 250석을 차지한 제1당이지만, 과반을 차지하진 못했다. 야당 협조 없이는 법안 통과가 어려운 실정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프랑스 헌법 제49조 3항을 발동해 표결 없이 법안 처리를 강행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프랑스 정부는 오는 23일 국무회의에서 연금개혁안을 담은 법안을 심의한 뒤 하원으로 넘길 계획이다. 이어 30일 상임위원회 논의를 거쳐 2월 6일 본회의 상정에 나설 예정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