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말 한 달 동안 실시한 국립현대미술관 감사 결과 드러난 16건의 위법·부당 업무 내용을 보면 기가 막힌다. 회계 질서 문란, 갑질 등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의아할 따름이고, 당국은 대체 뭘 했나 싶다. 국고에 넣어야 할 돈을 직원 격려금으로 임의 집행했는가 하면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 일부는 고장 난 채 전시했다. 지난 3년간 체결한 3000만원 이상 계약 21건 중 20건은 수의계약이었고, 응찰 보고서 제출도 없이 경매에 참여한 게 40건에 달했다. 유튜브 채널 해킹 사건은 문체부에 보고조차 안 했다.
경영 부실만의 문제도 아니다. 상급자가 부하 직원에게 “나가서 딴소리하면 죽인다”는 폭언도 했고, 얼굴을 점수로 매기는 등 모욕적인 갑질 행위도 드러났다. 윤범모 관장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안일한 태도로 일관해 조직 내 불신을 키웠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이런 문제점은 이미 지난해 초부터 공개적으로 표출돼 파장을 낳았다. 지난해 1월엔 노조가 갑질과 부당 인사를 규탄하는 성명을 냈고, 윤 관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사과까지 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2월 윤 관장을 재임명했다. 그가 부임한 이후 이런 난맥상이 터져 나왔음에도 문재인 정부는 정권 임기 석 달을 남기고 ‘알박기 인사’를 강행한 것이다.
취임 일성으로 북한 미술에 대한 연구, 북한과의 교류 전시 추진을 내놓을 정도로 대표적인 민중미술계 인사로 꼽히는 윤 관장은 2018년 11월 첫 임명 때부터 논란이 컸다. 기관장 역량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아 탈락했지만, 문체부(당시 장관 도종환)는 재평가 기회를 주는 무리수를 두면서 미술계 내에서 ‘답정너 인사’ 등 특혜 시비가 거세게 일었다. 문 정부가 함량 미달 인사를 작정하고 ‘코드’로 꽂아 넣어 미술계에까지 좌파 카르텔을 구축한 것이다. 윤 관장은 감사 결과가 나오자 “미술관을 혁신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을 만신창이로 만든 주역은 그럴 말할 자격이 없다. 그가 당장 해야 할 것은 책임을 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