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의 비정규직 불법파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전기자동차 설비투자는 어렵다.”
스티브 키퍼 제너럴모터스(GM) 수석부사장이 2021년 한국을 방문해 낸 우려의 목소리다. 당시 한국GM과 카허 카젬 전 사장은 사내 하도급 근로자들로부터 불법파견 관련 소송을 당해 재판을 받고 있었다. 9일 1심 판결에서 유죄가 선고되면서 키퍼 수석부사장의 우려는 현실이 되는 분위기다.
한국GM은 이번 판결에 깊은 유감을 나타냈다. 항소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파견법은 파견근로자를 위해 도입됐지만 최근 들어 법원에서 적법한 사내하도급을 불법파견으로 규정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대법원이 “현대차·기아가 생산 공정이 아닌 간접 공정에서 협력업체 근로자를 사용한 것 또한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하면서 제조업에서 도급이 종말을 맞았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한국GM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1조6300억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했지만 경남 창원공장에 1조원을 추가 투자해 올해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이날 고용노동부가 파견법 개정을 통해 법원의 불법파견 유죄 판결 기조를 개선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데 대해 기대하는 분위기다. 강남훈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외국에서는 파견 근로를 광범위하게 허용하면서 산업의 활력을 높이고 있다”며 “현실에 맞는 노동 유연성과 노동 개혁이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외국인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처벌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3년 닉 라일리 한국GM 초대 사장도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돼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번에 카젬 전 사장까지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법 적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강 회장은 “과태료 등 경제적 벌칙은 어느 정도 고려할 수 있지만 형벌로 처벌하는 건 과하다”고 지적했다.
경직된 노동 관련 법과 CEO 처벌로 외국 기업의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한국을 공장 건설의 최우선 후보지로 꼽은 상황에서 다양한 근로 형태를 막는 판결이 잇따르는 것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한신/김형규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