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화질’로 주목받던 8K(7680×4320) TV의 인기가 시들하다. 신기술의 격전장으로 꼽히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3’에서도 8K 제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전용 콘텐츠가 부족한 데다 가격도 비싸 소비자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전자업체 TCL은 CES 2023에서 열린 브리핑을 통해 “올해 북미 시장에 8K TV를 출시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 회사는 유럽에 올해 8K TV를 내놓지 않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TCL이 8K TV 출시를 중단한 건 아직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해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올해 8K TV 출하량이 지난해보다 5.8%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연간 기준으로 첫 역성장이다. TCL 측은 “글로벌 8K TV 판매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최고 수준의 4K TV를 통해 8K TV 수요를 흡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8K TV는 이론상 기존 4K UHD(3840×2160)와 비교해 네 배 선명하다. 2017년 일본 샤프에 이어 이듬해 대부분의 업체가 8K TV 시장에 뛰어들었다. ‘TV는 크면 클수록 좋다’는 거거익선에 이어 압도적인 화질을 갖춘 8K가 새로운 TV업계의 트렌드로 부상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업계의 기대만큼 빠르게 커지지 않고 있다. 출시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전체 TV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0.2%에 불과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비싼 가격이다. 시중 8K TV 가격은 1000만원 안팎부터 시작한다. 비싼 제품은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8K TV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전용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점도 숙제로 꼽힌다. 한국을 포함해 대부분의 국가에서 8K 화질 방송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고 있다. 올해는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침체와 유럽연합(EU)의 에너지 효율 규제 움직임까지 겹쳐 상황이 더 힘들어졌다.
이런 분위기는 CES 2023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8K TV를 준비한 업체는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 외진 자리에 제품을 배치했다. TCL과 함께 TV를 전시한 중국 업체 하이센스는 미니LED TV인 ‘ULED 4K TV’를 부스 전면에 내세웠다. 전통적인 TV의 명가 일본 소니는 아예 TV를 공개하지 않았다. LG전자 역시 이번 부스에서 8K LCD TV를 비치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8K TV의 개화가 머지않았다는 관측도 나온다. 화질을 8K로 전환해주는 업스케일링 등 각종 기술이 발전하면서 8K TV 성능을 체감할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는 논리다. 게임업계가 고해상도 콘솔 게임을 내놓으면서 눈높이가 올라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상황이 긍정적으로 전개된다면 전체 8K TV 시장에서 점유율이 70%가 넘는 삼성전자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CES 2023에서 신제품인 98형 네오 QLED 등 8K TV를 대대적으로 앞세웠다.
배성수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