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다리 잘려도 절대 못 끊는다"…美 비상 걸린 이유

입력 2023-01-09 14:42
수정 2023-01-09 14:49

미국의 마약 중독자들 사이에서 동물 진정제 '자일라진'(xylazine)을 기존 마약에 혼합해 오용하는 경우가 급증해 보건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시간) '트랭크 마약'으로 흔히 불리는 자일라진 혼합 마약을 투약한 경험이 있거나 요즘도 투약하고 있는 중독자 여러 명의 사연을 전했다.

타투 아티스트인 브룩 페더(38)는 '트랭크 마약'을 투약했다가 뼈까지 상처가 번져 1년 전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다. 그러나 그는 그 후에도 금단증상을 견딜 수 없어 하루에 여러 차례 팔에 이런 마약을 주사하고 있다.

NYT는 5개월째 재활치료를 받는 어떤 중독자가 팔 하나와 다리 하나를 절단한 후에도 절단된 다리의 남은 부분에 '트랭크 마약' 주삿바늘을 찌른다고 전했다.

1962년 개발된 자일라진은 한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에서 수의사들이 말·소 마취제나 고양이 구토유발제로 널리 쓰는 동물용 의약품이다. 상표명은 '럼푼'(Rompun)이다. 미국에서는 '트랭크'(tranq), '좀비 약'(zombie drug) 등 속어로도 불리며, 푸에르토리코에서는 '말 마취제'(anestesia de caballo)라고도 불린다. 2000년대 들어서 마약중독자들에 의해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NYT에 따르면 자일라진을 펜타닐 등 기존 마약에 섞어 주사로 투입할 경우, 팔다리 등에 '가피(痂皮·eschar)' 혹은 '괴사딱지'라고 불리는 죽은 부스럼 조직이 생긴다. 이를 치료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팔다리를 절단해야 할 수도 있다.

자일라진 혼합 마약은 정신을 잃을 수도 있고 투약 후 깨어났을 때 펜타닐 등의 효과가 이미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에 마약을 더 투약하고 싶은 갈망이 생길 우려가 있다. 표준적 응급치료가 제대로 듣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NYT가 인용한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미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시중에 유통되는 마약을 검사해 본 결과 자일라진이 함유된 사례가 90%를 넘었다. 또 지난해 6월 발표된 연구에서는 미국 수도 워싱턴 DC, 그리고 50개 주 중 36개에서 유통되는 마약에 자일라진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전국 임상의들에게 4쪽짜리 자일라진 경고서한을 보냈다. 이 약물에 대한 검사가 늘 이뤄지지 않은 탓에 실제 퍼져 있는 정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으로 전해진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