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인수자·송금까지 '태클'…"200억 자산 팔아 손에 쥔건 30억"

입력 2023-01-08 18:27
수정 2023-01-16 16:43


중국 톈진시에서 자동차 부품업체를 운영하던 C사는 현지 기업에 회사를 매각하기로 하고 협상을 마쳤다. 마지막 신고 절차만 남겨뒀는데 돌연 톈진시 개발구 관리위원회로부터 “매수자 적격 심사가 필요하고,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기업에는 매각할 수 없다”는 내용의 공문을 받았다. 이후 톈진시 부동산 관리 부서에선 C사가 토지사용비 지급을 누락했다며 해당 금액과 5배가 넘는 연체료를 청구했다.

중국 다롄에 공장을 둔 D사는 지난해 말 회사 매각 대금을 한국으로 송금하기 위한 마지막 심사 절차인 외국인직접투자(FDI) 대상 회사 등기 변경 단계에서 현지 은행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 외환관리국에서 매각 가격이 순자산장부금액과 왜 차이 나는지 상세히 설명하지 않으면 한국으로 매각 대금을 송금할 수 없다고 통보해왔기 때문이다. 거래 당사자 간 협상으로 정한 가격에 대해 당국이 이의를 제기한 건 전례 없는 일이었다.
떠나려는데 투자금 회수 만만찮네중국 정부가 한국 기업들의 철수에 제동을 걸고 나선 건 최근 들어 중국을 떠나려는 기업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 상하이지부가 지난해 6월 중국에 진출한 177개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98개사(55.3%)가 사업 축소·중단·철수·이전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최근엔 자동차 부품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중국시장 철수가 줄을 잇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체감하는 중국 내 경영 환경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최근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406곳을 대상으로 한 경영 환경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공장 가동률이 80% 이상이라고 답한 기업은 13.8%로, 2020년(25.6%)에 비해 크게 줄었다. 가동률이 60% 이하라고 답한 곳이 절반 이상(52%)이었다. 법무법인 태평양 상하이사무소를 이끄는 김성욱 변호사는 “현지에서 국내 기업 법률 자문을 맡아온 지 15년째인데 최근처럼 철수 문의가 빗발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청산 틀어막고 M&A에도 개입3~4년 전까지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은 사업을 철수할 때 대부분 자산과 부채를 상계하는 청산을 택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선 기업들이 청산을 원하면 그만큼 세수가 줄어들다 보니 깐깐한 잣대를 들이댔다. 예를 들어 국내 중견 소비재 기업 E사는 2017년 중국 청두 공장의 청산을 결정했지만 3년간 규제에 시달리며 2020년 말에야 철수할 수 있었다. 토지 차익은 대부분 토지 부가가치세로 환수됐고 환경 관련 과태료 등이 부과됐다. 청산 직후 200억원에 달했던 잔액 중 국내에 송금한 건 30억원에 불과했다.

청산이 힘들어지자 기업들은 대안으로 M&A를 통한 투자금 회수를 택하고 있다. 그러자 M&A 절차를 신고제로 간소화하는 등 제도를 정비해온 중국 정부가 최근 들어 날선 규제를 들이밀고 있다. 해외 투자를 유치하는 게 주요 성과였던 지방 정부들이 한국 대기업 계열사와 중견업체가 잇따라 이탈하자 경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M&A에 관심을 보이는 중국 기업들도 한국 기업의 영업보다 부동산 장기 임대권에 더 눈독을 들이는 사례가 많다. 현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중국 내 도심이 확대되면서 국내 기업들이 2000년대 중후반에 50년간 장기로 임차한 토지가 저절로 요지가 된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사업 철수를 계획 중이라면 최소한 영업 손실을 보기 1년 전부터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회림 삼일PwC 파트너는 “손실이 시작된 후 철수를 결정하면 현금을 투입해 자본금을 늘려놓아야 원매자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빠른 의사결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