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형(21)이 올해부터 나이키 모자를 쓴다. 5년간 2000만달러(약 253억원)를 받는 조건이다. 전 세계 모든 골퍼 중 ‘톱10’에 드는 금액으로 알려졌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최고 기대주인 점을 감안, 나이키가 김주형의 세계랭킹(15위)보다 후한 대접을 해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6일 국내외 골프업계에 따르면 김주형은 최근 나이키가 제시한 계약조건인 ‘연 400만달러+α, 계약 기간 5년’에 합의했다. 김주형이 최근 인스타그램을 통해 나이키 옷을 입은 영상을 공개하면서 계약 사실이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계약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8월 김주형이 윈덤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직후 나이키와 계약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며 “그때만 해도 연 300만달러 정도였던 계약금액이 10월 슈라이너스 칠드런스 오픈 우승 뒤 더 뛰었다”고 말했다. 김주형에게 ‘풀베팅’한 나이키김주형은 한국 골프 역사상 가장 ‘몸값’이 높은 선수가 됐다. 최경주(53)와 노승열(32)도 한때 나이키 모자를 썼지만, 후원금 규모는 김주형에게 크게 못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박세리(46)가 2002년 CJ와 계약하면서 받은 ‘5년 150억원’(인센티브 포함)이 그나마 높은 금액이었다.
한 글로벌 골프 브랜드 관계자는 “나이키가 과거 최경주와 노승열을 후원한 건 한국 시장을 잡기 위해서였지만, 김주형은 세계 시장을 겨냥해 베팅한 것”이라며 “이 정도 금액은 PGA에서도 ‘A급 선수’만 받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업계에선 나이키와 계약할 당시 세계랭킹 9위이자 최고 기대주였던 토미 플리트우드(32·잉글랜드·현재 23위)의 후원금이 연간 400만달러 안팎인 만큼 김주형의 후원금 규모는 세계 톱10에 드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골프업계 관계자는 “기존 스폰서인 CJ가 연간 150만달러가 적힌 계약서를 준비했다가 나이키의 베팅 금액을 보고 곧바로 포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무명이었던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CJ 모자를 쓴 김주형의 후원금은 연간 약 1억5000만원 안팎이었다. 3년 만에 몸값이 30~40배 뛴 셈이다.
한 관계자는 “김주형이 계속 좋은 성적을 내면 다음 계약 때는 더 높은 금액을 보장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슈퍼스타’ 로리 매킬로이(34·북아일랜드)는 2017년 나이키와 계약을 연장하면서 ‘10년·1억달러’(약 1268억원)를 보장받았다. 경쟁사 제품 착용도 허용계약 내용을 봐도 나이키가 김주형에게 상당 부분 양보한 것을 알 수 있다. 나이키는 선수들에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이키 브랜드만 착용하도록 하는 ‘헤드 투 토(head-to-toe)’ 계약을 고집한다. 하지만 김주형은 오른팔 소매에 지난해 후원 계약한 명품 시계 브랜드 ‘오데마피게’ 로고를 달도록 허용했다. 한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나이키와 지난해 오데마피게와 맺은 후원 계약 기간이 겹쳤을 것”이라며 “나이키가 (계약 잔여기간인) 1년 동안 오데마피게 로고를 눈감아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타이틀리스트와 풋조이를 거느린 아쿠쉬네트도 이번에는 볼과 클럽만 후원하기로 했다. 아쿠쉬네트는 선수들과 용품 후원 계약을 맺을 때 골프클럽과 공은 물론 신발, 장갑도 한데 묶어 계약한다. 그래서 김주형처럼 선수에게 타이틀리스트가 볼과 클럽만 후원하는 건 이례적이다. 용품업계 관계자는 “아쿠쉬네트 장갑과 신발을 양보한 건 언더아머를 입는 조던 스피스 정도”라고 설명했다.
김주형은 지난해 8월 PGA투어에서 특별 임시회원 자격으로 출전한 윈덤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다음달 열린 프레지던츠컵에서 인터내셔널 대표팀으로 출전해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고, 10월에는 슈라이너스 칠드런스 오픈에서 우승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만 20세3개월18일 만에 2승을 거뒀는데, 이는 만 20세9개월21일 만에 2승을 달성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8·미국)보다 약 6개월 빠른 기록이었다. 현재 세계랭킹은 15위로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높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