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올해 0%대로 주저앉을 것이란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전망이 나왔다. 기획재정부(1.6%)와 한국은행(1.7%) 예상치보다 경기가 훨씬 더 나빠질 것이란 경고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출이 부진에 빠지고, 고금리 여파로 소비 위축까지 더해지면서 경기가 예상보다 가파르게 하락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내외 불확실성이 큰 만큼 섣불리 ‘바닥’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씨티, 1.0→0.7%로 하향 조정
5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씨티, HSBC,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등 외국계 IB 세 곳이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전월 대비 하향 조정했다.
씨티는 1.0%에서 0.7%로 낮췄다. 김진욱 씨티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제조업, 수출 부문이 대외 수요 약화, 높은 재고 부담, 자금조달 비용 증가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SBC는 1.5%에서 1.2%로,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는 2.0%에서 1.9%로 전망치를 낮춰 잡았다.
이들을 비롯해 바클레이스, 크레디트스위스, 골드만삭스, JP모간, 노무라, UBS 등 주요 외국계 IB 9곳의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1.1%였다. 기재부와 한은은 각각 1.6%와 1.7%,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8%, 국제통화기금(IMF)은 2.0%를 제시하고 있지만 IB들은 1%대에 간신히 턱걸이하거나 아예 0%대로 주저앉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성장률 전망치가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망치가 나온 순서로 보면 IMF가 작년 10월, OECD·KDI·한은은 작년 11월, 기재부는 작년 12월 21일이었다. 이번 글로벌 IB의 전망치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1월 ING은행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0.6%로 예상했다. 한국이 대외 무역 의존도가 높은 만큼 글로벌 경기 침체의 타격이 더 클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더해 이번엔 씨티까지 0%대 전망에 가세한 것이다.
지난달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주재로 열린 거시경제 전문가 간담회에서도 연구기관, 학계, 국제신용평가회사 관계자들은 올해 성장률과 관련해 “대체로 1%대로 둔화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대외 여건이 더 악화하면 추가 하락할 수 있다”며 0%대 추락 가능성을 거론했다. 불황 경고음 더 커졌다경기 전망이 갈수록 어두워지는 건 그만큼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전 세계 교역과 반도체 업황 위축 등으로 올해 수출이 작년 대비 4.5%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의 물가 하락이 늦어지고 중국의 코로나19 사태가 심해지는 등 상황이 악화되면 수출이 더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내수 여건도 좋지 않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5.1%에 이어 올해도 3.5%에 이를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여전히 물가목표(2.0%)보다 높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3일 “시계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했다.
경기 회복 시점에 대해서도 전망이 엇갈린다. 일각에선 올 상반기가 지나면 점차 경제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KOTRA는 이날 ‘2023년 수출전망 및 지역별 시장 여건’ 보고서에서 “공급 측면의 리스크 해소와 수출 기회요인을 적극 활용할 경우 3분기 이후부터 수출이 성장세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정부도 올해 상저하고(上低下高)의 경기 흐름을 예상하고 있다.
반면 LG경제연구원은 지난달 ‘경영인을 위한 2023년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높아진 금리 부담이 시차를 두고 반영되면서 상반기보다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더 낮은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선방하고, 중국 경제가 빨리 반등할 때 경기 회복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며 “회복을 하더라도 그 정도는 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도원/조미현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