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유가증권시장이 25% 하락하며 주요 20개국(G20) 중 최악의 증시 성적표를 받아 든 것은 투자자에게 작지 않은 충격이었다. 어제 코스피지수가 급반등했지만, 장중 2200선이 무너질 정도로 연초 투자심리가 위축돼 있다. 이런 지수 움직임은 기업들의 기대수익력 약화와 함께 원·달러 환율 등 외부 변동성에 취약한 한국 시장이 올해 새로운 상승동력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대변한다.
실제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의 23%를 점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부진을 필두로 대부분 상장사의 이익 전망이 일제히 뒷걸음질 치고 있다. 정보기술(IT) 분야 상장기업의 주당순이익은 올해 50%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올해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의 순이익 추정치는 6개월 전에 비해 25% 감소한 150조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순이익 추정치 140조원에 지수 2300선을 오간 2017~2018년 시황으로 후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코스피지수 3000포인트를 회복하려면 순이익이 200조원은 돼야 한다”고 하지만 올해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한국 기업의 수익성 약화는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수출 감소와 기업들의 고비용 구조 정착 등의 영향이 크다. 미·중 기술패권 갈등도 한국 기업엔 중국 시장에서의 고전과 함께 미국 현지 공장 신·증설이라는 공급망 재배치 비용 증가로 작용했다.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자기자본이익률(ROE)로 본 한국 기업 수익률이 2010년 이후 하락하고 있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최근 10년간 중국·아세안 기업의 경쟁력이 강해지면서 수출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이윤 확보가 어려워진 결과다. 미국 등 주요국은 10% 초반, 인도의 경우 13%대인 ROE가 한국은 7% 중반에 그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수익력으로는 시장 에너지를 끌어올리기 어렵다. 반도체 초격차 전략은 대만 TSMC에 가로막혔고 중국의 제조업 추격 속도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한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움직임도 시큰둥하다. 2년 전만 해도 39%대였던 유가증권시장 외국인 투자 비중은 지금 30% 선으로 줄었다. 작년 말 한국 상장기업의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선진국의 절반 수준인 1.0배에 그친 것도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대한 외국인들의 우려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증권시장 반등은 일정 수준의 시간을 요구한다. 과거 같은 유동성 장세 재연은 기대하기 어렵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구조가 어느 정도 누그러져야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상장사들의 국제 경쟁력 강화와 사업 체질 개선이다. 안으로는 내실을 다지면서 미래 성장에 필요한 투자를 과감하게 집행함으로써 새로운 성장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배당 등 주주환원 방안을 강화하고 기업 지배구조와 회계 투명성 등도 재점검해 투자자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엔젤투자자에서 액셀러레이터, 벤처캐피털로 이어지는 벤처 생태계도 탄탄하게 가꿔나가야 한다. 전통산업과 기존 IT산업만으로는 시장에 새로운 피를 수혈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과 주식시장이 다시 뛰게 하려면 민간의 노력만으론 부족하다. 정부는 기업 활동의 자유와 선택 폭을 넓혀주는 정책을 적극 강구하고, 신산업 육성과 경제체력 강화를 위한 규제혁파에 나서야 한다. 다른 국가들이 자국 기업을 키우기 위해 펼치는 전방위 노력에 뒤처지지 않도록 우리도 기업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재정·금융·세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