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F의 간판 브랜드인 ‘헤지스’가 1조원 매출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약 80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올해 고지 점령이 유력하다. 특히 이 중 절반을 중국 등 해외에서 거뒀다는 점이 주목받는다. 2000년생 토종 트래디셔널 브랜드인 헤지스의 선전은 구본걸 LF 회장의 뚝심이 빚어낸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해외에서 통하는 ‘K패션의 오리진’4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LF는 헤지스의 해외 진출을 올해 일본, 유럽, 미국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트래디셔널 브랜드 시장은 ‘폴로 랄프로렌’과 ‘타미힐피거’가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영역”이라며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빈폴도 해내지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LF 관계자는 “헤지스는 지난해 베트남에도 현지 유력 업체와 계약을 맺고 매장을 냈다”며 “2007년 진출한 중국에선 매장이 500개에 육박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 중”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연간 수천억원의 매출을 거두는 패션 브랜드로는 F&F의 ‘MLB’가 대표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MLB만 해도 중국에서 K패션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다. K패션의 오리진(근본)을 강조하고 있는 헤지스의 해외 진출이 의미 있는 이유다.‘뚝심의 승부사’
패션업계에는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하는 ‘LF 스타일’에 주목하고 있다. 작년 4월 글로벌 브랜드 매니지먼트 기업인 어센틱브랜드그룹으로부터 리복 한국 판권을 인수한 게 그런 사례다.
1895년 탄생한 리복은 나이키, 아디다스와 함께 고유의 헤리티지(유산)를 지닌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다. LF 관계자는 “오랜 전통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디자인 아카이브(지식 창고)를 가진 브랜드만이 살아남을 것이란 판단에서 투자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LF는 스포츠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은 바 있다. 2000년대 중반에 ‘라푸마’라는 고유 브랜드를 내놨지만, 시장에 안착시키는 데 실패했다. 30명으로 구성된 리복 사업부문 구성원을 부문장 포함 28명의 ‘외인부대’로 채운 건 과거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패션 대기업의 자존심LF의 패션 경영은 다른 대기업 계열 패션 기업과는 결이 다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만 해도 ‘아미’ 등 젊은 세대에 호소할 수 있는 해외 브랜드를 빠르게 발굴하는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계열인 한섬 역시 삼성물산 출신 박철규 사장을 영입해 지난해 8월 스웨덴 디자이너 브랜드 ‘아워레가시’를 선보였다.
LF 역시 해외 브랜드 수입을 비즈니스 모델의 한 축으로 삼았지만, 전통 브랜드를 강화하는 것을 중심축으로 두고 있다. 2020년엔 버버리 출신 세계적 디자이너인 뤽 구아다던을 닥스 국내 총괄 최고디자인책임자(CD)로 영입하기도 했다. LF 관계자는 “오리진이 분명한 브랜드에 대한 꾸준한 신뢰가 LF 패션 경영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