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개혁 일성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9일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파업) 사태가 정부의 완승으로 결론 난 직후부터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노동개혁을 이뤄내지 못하면 정치도 경제도 망한다”는 강렬한 발언을 내놨다. 21일 비상경제 민생회의에서는 “노조 부패는 공직 부패, 기업 부패와 함께 척결해야 할 3대 부패 중 하나”라고 했고, 같은 날 오후에는 청년들을 만나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것이 노동개혁”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26일에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노노(勞勞) 간 착취구조 타파”를 외쳤고, 올해 신년사에서도 “가장 먼저, 노동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나가겠다”고 했다. 대통령 혼자서는 개혁 한계대통령의 발언이 나오면 이에 뒤질세라 여당과 정부에선 후속 발언이 어김없이 이어졌다. 대통령의 뜻을 받들겠다며 여당은 서둘러 관련 법안 마련을 선언하고, 정부는 새로운 의제가 나올 때마다 마치 준비해오던 일인 양 관련 보도자료를 뿌렸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6~7월 뜨거운 이슈였던 대우조선해양 사태 때도 다르지 않았다. 하청노조의 파업이 47일이나 이어지자 윤 대통령은 “관계부처 장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지시했고, 몇 시간도 안 돼 관계부처 장관들은 합동담화문을 내고 이튿날부터 부랴부랴 현장으로 달려갔다. 조선소 점거 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넘도록 눈치만 보고 있던 장관들이었다. 당시 대통령실에서 “대우조선해양 사태 해결은 윤 대통령이 혼자 다한 것”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국민의힘 의원 공부모임이라는 ‘국민공감’ 강연 행사가 있었다. 강연자는 이명박 정부 시절 고용노동부 수장이었던 이채필 전 장관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현 정부의 노동개혁은 성급하거나 의뭉스럽다”고 다소 뜨악한 발언을 했다고 한다. 노동개혁이 성공하려면 초기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일 테다. 이 전 장관은 이전에도 줄곧 “개혁은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온 인물이다. 선장 대신할 항해사 있어야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은 1년여의 산통 끝에 ‘9·15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황금알을 낳고도 후속 입법 과정에서 당·정·청 간 엇박자가 나면서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이기권(당시 고용부 장관)이라는 걸출한 전략가가 있었지만, 그에게는 청와대와 국회, 정부를 온전히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동개혁은 지난한 협상과 설득,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때론 이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선장(대통령)이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챙길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부패 척결이나 기득권 탈피 같은 당위가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지금처럼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는 식으로는 개혁은 난망하다는 얘기다. 장관을 믿고 전권을 주든, 노동개혁 특보(특별보좌관)를 두든 대통령실과 국회, 정부를 원팀으로 이끌 ‘항해사’가 필요한 이유다. 마치 연극이 끝난 무대처럼, 구호만 무성한 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박근혜 정부 노동개혁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