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사에 노조는 콧방귀도 안 뀌네요. 조폭도 이렇게 경찰을 우습게 보진 않을 겁니다.”
경남 창원의 한 건설 현장 책임자인 이모 S건설 소장은 1일 “건설 노조 탓에 공사가 멈춰 직원 12명의 지난달 월급을 아직도 주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하청받아 308가구 규모 행복주택을 짓고 있는 S건설은 지난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조합원을 고용하라는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자 민주노총은 지난달 15일 경남 지역 조합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레미콘 타설을 중지시켰다. 이 소장은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이 끝났다고 발표했지만 개별 사업장의 불법 파업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노조의 불법 행위를 근절한다고 발표했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노조 횡포는 그대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감 요구와 공사 현장 점거를 통해 건설사를 굴복시키는 ‘구태(舊態)’가 이어져도 경찰과 지방 고용노동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노조 눈치 보기에 애꿎은 건설 현장만 피해를 보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 아파트 공사 현장의 시공 전 과정에 걸쳐 노조원을 고용하라고 S건설을 압박하고 있다. 공사를 막는 노조의 수법은 교묘하고 치밀했다. 아파트 공사는 토목과 기초, 골조, 마감 순으로 이어진다. 노조는 가입 조합원 비율이 90%를 넘는 레미콘 타설(골조 공사의 일부) 단계에서 공사 방해 수위를 높였다. 레미콘을 공급받지 못하면 아파트 건설의 핵심인 골조 공사를 할 수 없어 현장의 모든 작업이 사실상 ‘올스톱’된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시멘트와 골재, 물 등을 배합해 만드는 레미콘은 공급받는 즉시 타설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재고 비축도 불가능하다.
노조는 비노조원 고용도 막고 있다. 노조원들은 이달 중순 비조합원이 레미콘 타설을 시도하자 현장에 무단 침입해 비조합원을 강제로 끌어내렸다. 건설 현장 관계자는 “온갖 욕설과 협박으로 타설 자체를 막아버렸다”고 전했다.
민주노총은 한술 더 떴다. 현장에 상주하지도 않는 조합 간부에게 임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노조 간부급에겐 월 900만원, 현장에서 업무를 조율하는 반장급에겐 월 700만원을 지급하라고 압박했다. 경찰 관계자는 “일하지 않는 노조 간부가 월급을 받아 가는 건 명백한 갈취 행위”라고 지적했다.
S건설 측은 이들 요구를 다 들어줄 경우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 소장은 “노조 인건비로 원청인 LH로부터 받는 금액보다 50%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며 “직원 월급은커녕 공사를 마쳐도 회사가 한 푼도 벌지 못하는 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이 아예 시공권을 가져가 공사를 마무리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한숨을 지었다.
노조 횡포에도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경찰은 지난달 27일에서야 현장을 방문한 뒤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하고 있다. 경남경찰청 관계자는 “수사 초기 단계여서 구체적인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며 “다만 사건 접수 후 1주일 만에 수사에 착수했다”고 해명했다. 아직 노조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수사 마무리까지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법조계에선 사측이 비노조원 협박 현장을 목격했고 사진 등의 증거 자료도 있어 처벌이 가능하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검찰 출신인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비조합원이 타설을 못 하도록 압박할 경우 형법상 업무방해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수사 마무리 전 공사 중단을 멈출 수 있도록 경찰이나 고용노동부가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김우섭/장강호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