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까지 급속도로 팽창했던 고급 화장품 편집숍이 줄줄이 폐점하고 백화점으로 둥지를 옮기고 있다. 코로나19 확산과 한한령(한류 제한령)으로 인한 중국 관광객 감소가 직격탄을 날렸다. 화장품 편집숍은 서울 명동 등 주요 상권 매장을 닫고, 백화점으로 옮겨 프리미엄 편집숍으로 새단장하고 있다. 시코르·세포라의 몰락
신세계백화점의 뷰티 편집숍 ‘시코르’는 2021년 말부터 길거리 매장 폐점을 본격화했다. 1일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시코르는 작년 3월 엔터식스 안양점을 폐점한 데 이어 10월에는 스타필드 하남점 문을 닫았다.
신세계는 ‘한국 화장품의 세계화’를 내걸고 2017년 시코르 첫 매장을 선보였다. 이후 2년 만에 30호점을 출점할 정도로 빠르게 세를 불렸다.
하지만 2021년 12월 1호점 명동점 문을 닫은 이후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점, 대구 동성로점, 부산 서면점을 연이어 폐점했다. 이에 따라 전체 매장 수는 23개로 줄었다.
시코르와 더불어 고속 확장을 거듭했던 글로벌 뷰티숍 ‘세포라’도 부진을 견디다 못해 개점휴업에 들어갔다. 세포라는 2021년 명동점을 폐점한 뒤 매장을 한 곳도 늘리지 않았다. 2021년 영업손실은 145억원으로 매출(124억원)보다 많다.
편집숍의 침체는 로드숍의 부진과 궤를 같이한다. 한국 화장품은 중화권 소비자가 한때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2017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간 마찰, 2020년 코로나19 창궐도 타격을 줬지만 중국 로컬 화장품 품질이 크게 개선된 게 보다 근본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전면적 고급화해야 中 잡아”화장품 편집숍들은 백화점으로 이동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중저가 부문에서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고급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코르는 최근 ‘산타마리아노벨라’ 등 30만~40만원대 럭셔리 니치 향수 존을 구성하는 리뉴얼을 진행 중이다.
온라인 사업도 강화하고 있다. 시코르는 온라인 판매를 늘리기 위해 인터넷 쇼핑몰 대행업체 웹누리에 운영을 맡겼다. 쿠팡, 컬리, 무신사 등 e커머스 강자들이 마음먹고 침범해 들어오자 오프라인 매장만으로는 경쟁력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온오프라인 매장을 연결해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한 CJ올리브영의 옴니채널 전략을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길거리 매장과 백화점의 화장품 판매 비중은 2017년 87.2%에서 2021년 79.0%로 줄었다. 이 기간에 온라인 비중은 12.8%에서 21.0%로 급증했다.
화장품업계는 오는 8일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규제가 대폭 풀리는 게 화장품 편집숍의 부활 여부를 가늠할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본다. 2019년까지 한국 화장품의 ‘큰손’이었던 중국 보따리상이 다시 몰려올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중국의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 자국 제품 우선주의가 확산해 코로나19 규제가 풀리더라도 예전과 같은 호황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며 “전면적 고급화만이 살길”이라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