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배오개시장(현 동대문시장) 포목점의 둘째딸로 태어난 혜훈은 고사리손이 여물기 시작한 후부터, 언니의 얼굴을 도화지 삼아 연지 그리기를 가장 좋아하는 아이였다. ‘화장’이라는 말도 모른 채 그저 곰보로 얽은 언니의 얼굴이 화사해지는 걸 보는 게 좋았다. 그러던 언니가 얼굴이 흉하다는 이유 때문에 혼례식장에서 버림받는 것을 보게 되면서, 혜훈은 언니의 얼굴을 세상 누구보다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당찬 결심을 한다. 그리고 그 결심은 혜훈의 일생을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의 비밀을 찾는 여정으로 바뀌게 한다.
혜훈은 경성에서 가장 고운 여인들이 모여 있다는 명월관에서 기생들의 뽀얀 얼굴의 비밀이 ‘분(粉)’에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스스로 ‘백분’을 만든다. 혜훈은 재래식 분의 단점인 밀착력을 보완하기 위해 납연, 즉 납가루를 첨가하게 되는데….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 될 줄은 알지 못한 채, 자신이 만든 분을 ‘백화분’이라 이름 짓고 아버지의 포목점 손님들에게 나눠준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백화분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고 혜훈의 가족들은 본격적인 상품 등록과 더불어 공장까지 지어 대규모 생산을 하면서 큰 부를 얻지만, ‘납중독’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악재가 터지면서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진다.
납중독으로 인한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애쓰던 혜훈은 ‘숯’의 존재와 효능을 알게 된다. ‘가꾸고 꾸미는’ 화장이 아닌 ‘치료’로서의 화장의 의미를 깨달은 혜훈은, 천연 재료를 이용한 화장품을 만들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그 후에도 다양한 유기농 원료를 통한 신제품 개발, 아름다운 패키지 고안, 전문 화장사들의 방문판매 등 새로운 화장품의 세계를 개척한 혜훈은 마침내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큰 성과를 이뤘지만 그만큼 많은 오해와 불화를 겪어야 했던 혜훈. 일제 식민지부터 해방, 6·25전쟁이라는 시대적 격랑에 휘말리는 동안 친일파라는 오해도, 미친년이라는 손가락질도, 화류계 인사라는 조롱도 받지만…. ‘미(美)’에 대한 혜훈의 열정과 집념은 쉽사리 꺾이지 않는다. ‘진정한 미(美)’가 그 무엇보다 힘이 세다는 것을 탁하고 못난 세상에 눈부시게 증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