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를 묻는다면 대다수가 뇌와 심장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보다 먼저 인간의 몸에 자리하는 기관이 있다. 바로 인간 신체의 배출구이자 숨구멍인 ‘항문’이다. 세포 발달 과정에서 가장 먼저 생겨나는 ‘원구(태아의 항문)’는 태아가 성장하는 데 중심축으로 작용한다.
항문은 정신적으로도 인간 발달 과정에서 막중한 의미를 지닌다. 프로이트 이론에 따르면 항문기는 유아가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끼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능력을 발달시키는 단계로 정의된다. 정신분석학자 드니즈 브라운슈바이크는 항문을 자아 형성기의 중심 기관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의의에도 항문은 신체 기관 중 인간이 가장 언급하길 꺼리는 부위다. 더럽고 음습하다는 선입견 탓이다. <애널로그>는 이런 편견에 맞서는 책이다. 저자 이자벨 시몽은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 신체활동에서 항문의 역할과 그를 둘러싼 인류 역사, 문화 등을 조명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역설한다. “항문은 제명당한 상스러운 구멍이 아니다. 이것 없이는 어떤 육체도 숨 쉴 수 없다. 남자와 여자 모두가 가진 중심축이자 생명력으로 팽팽한 이 기둥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상징으로서 남근보다 훨씬 더 적합하지 않을까.”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