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베이스의 백화점 리테일이 한 걸음씩 온라인으로 나아가는 연결 과정입니다”
신세계백화점 마케팅 담당자는 이 백화점이 보폭을 넓히고 있는 ‘구독 마케팅’에 대해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구독 마케팅은 온라인 기업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왔다. 그래서 대다수 오프라인 기업들이 ‘두려움 반, 부러움 반’의 심정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신세계백화점은 달랐다. 2020년 5월 업계 최초로 과일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최근엔 반찬 구독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구독 카테고리를 확장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과일 구독 서비스와 식품관 유료 멤버십 ‘신세계 프라임’ 등 선제적으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인 결과, 배달음식 시장 성장 등으로 쉽지 않은 업황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식품관 매출 증가율이 지난해 18.4%, 올해 20.4%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 백화점에 대한 고객 ‘신뢰’가 무기코로나로 고객들의 매장 방문이 어려워지면서 편리하게 받아볼 수 있는 구독 서비스에 대한 고객 니즈가 증가했다. 신세계백화점은 백화점 바이어가 큐레이션한 상품을 정기적으로 고객 집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고객들이 주기적으로 구매하는 ‘과일’을 첫 카테고리로 선정, 서울 강남점 근거리배송 지역(강남, 서초, 용산, 동작)에 거주하는 VIP고객을 대상으로 2020년 5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과일 바이어가 가락시장과 산지에서 품질 및 출하량을 직접 체크하므로 ‘과일의 맛과 신선도’를 가장 큰 강점으로 삼았다. 배송일 기준 전일 산지에서 출하된 과일을 당일 오전에 검수 및 포장해 오후에 배송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물류센터를 통해 진행되는 타 온라인 플랫폼에 비해 확연한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고객이 식품을 직접 보고 고르지 않고, 구독하는 것은 오랜 기간동안 형성된 신뢰 덕분”이라며 “안목 있는 백화점 바이어가 새벽시장에서 골라온 상품을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사서 고객들이 구독 서비스를 선택하고 있다”고 전했다.
과일 바이어가 과일의 특징, 보관법, 섭취법을 정리해 손편지 형식으로 구독 패키지에 넣어서 보내는 것도 고객들의 만족도와 신뢰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고객 선호도가 높은 제철 과일뿐 아니라 충랑 포도, 퀸니나 포도 같은 신품종이나, 에어룸토마토, 설아복숭아처럼 SNS에서 이슈가 된 상품도 고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 반찬 구독 서비스 론칭신세계백화점은 최근 반찬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 달에 16만2000원을 내면 월 4회 제철음식과 반찬, 국, 찌개를 집에서 배송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2021년 10월부터 우수고객 대상으로 시범 운영하던 것을 모든 고객으로 확대했다.
반찬 정기구독 서비스 론칭을 위해 25년 경력의 요리연구가 김재희 대표가 직접 운영하는 시화당 브랜드와 손을 잡았다. 김재희 대표가 직접 제철 음식과 절기 음식으로 식단을 짜고 재료를 선별해 요리한다.
메인 음식은 떡갈비, 갈치조림, 소불고기, 제육볶음 등 대중 선호 메뉴로 준비되며, 아욱국과 카레, 청국장과 무국, 두부새우젓국과 팥죽 등 각기 다른 취향에 맞춘 국과 찌개가 함께 포함된다. 반찬의 경우 꼬막무침, 유채나물무침, 오징어새송이조림, 돼지고기 마늘쫑 볶음 등 재철 식재료를 사용한 3가지로 메인, 국·찌개, 반찬 모두 매번 새롭게 구성된다.
■ 구독 서비스 카테고리·대상자·지역 확장과일 구독 서비스는 현재 500여명 가량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이 과일에 대해 갖는 자신감이 VIP 고객들 사이 입소문을 통해 퍼지면서 구독이 늘고 있다는 게 회사측 분석이다.
회사 관계자는 “매장에서 고객이 무엇을 함께 구매하는지 관찰해 구독 고객에게도 추천해주는 방식을 진행하고 있고, 오프라인 매장 방문을 유도하기 위해 푸드마켓 할인 바우처를 제공함으로써 선순환 사이클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은 구독 서비스 카테고리를 과일과 반찬에 이어, 요거트, 쌀, 식사빵 등으로 넓히고 있다. 현재 1가지 구성으로 운영되는 서비스의 경우 3~4가지 선택이 가능하게 만들 계획이다. 구독 서비스 대상자와 구독 서비스 지역도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장경영 선임기자
■ 전문가 코멘트
□ 천성용 단국대 교수
우유, 기저귀, 과일, 맥주, 면도기, 콘택트렌즈, 밀키트, 반찬, 속옷, 비타민, 패션, 음악, 영화… 최근 구독이 가능한 제품, 서비스들의 목록이다. 어쩌면 요즘에는 구독 서비스가 없는 산업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구독 서비스 시장은 2021년 729억 달러에서 2022년 1200억 달러, 2026년 9042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실제로 작년 미국인들의 구독서비스 지출액은 월평균 273달러였다. 영국의 경우, 2021년 전체 가구 중 65%가 구독서비스를 이용했는데, 2021년에는 이 수치가 81%까지 증가했다.
한편, 2018년 맥킨지(McKinsey & Company)에서 발표한 『Thinking inside the subscription box: New research on e-commerce consumers』 보고서에 따르면, 구독의 유형은 크게 (1)보충(Replenishment), (2)큐레이션(Curation), (3)접근(Access)으로 구분할 수 있다.
보충(Replenishment)은 면도기와 기저귀 등 일상 생활 용품의 재고를 편리하게 보충 구매해주는 서비스이고, 큐레이션(curation)은 패션, 화장품, 음식 등의 맞춤형 제품을 매번 새롭게 제안해 고객에게 즐거운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접근(access)은 넷플릭스와 같이 매달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대량의 콘텐츠를 낮은 가격에 접근하게 해주는 서비스이다.
사례에 소개된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전형적인 큐레이션 구독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대표 주자인 백화점에서 온라인 기업들이 활발히 도입하는 구독 서비스를 혁신적으로 실시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신세계백화점이 “무엇”을 판매할지보다 새로운 구독서비스의 “가치제안(value proposition)”에 더 집중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신세계백화점 구독서비스 이용자들이 실제로 구매하는 “제품(actual product)”은 과일, 반찬이겠지만, 아마도 그들이 신세계백화점으로부터 진짜로 구매하는 것은 결국 “신뢰”라는 가치일 것이기 때문이다.
신세계백화점이 나에게 매번 좋은 품질의 과일, 반찬을 맞춤형으로 제안해 줄 것이라는 “신뢰”. 이 가치제안에 설득된 고객은 신세계백화점 구독 서비스에 가입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구독서비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무엇”을 판매할 지가 아니다. 그보다는 더 근본적으로 “고객이 진짜로 사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즉 우리 구독 서비스만의 차별화된 “가치제안(value proposition)”이 명확히 존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마케터는 항상 “제품”보다 “소비자”에게 집중해야 한다. 또한, 구독 서비스는 결국 고객과의 장기적인 관계에 바탕하기 때문에 고객 만족, 신뢰 형성, 충성도 유도, 이탈 관리 등과 같은 “관계마케팅(Relationship marketing)” 전략을 자사의 구독 서비스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적용시키느냐가 중요하다. <hr >
□ 최현자 서울대 교수
소비자가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품의 품질이 좋아서, 최신 유행 상품이 많아서, 고급스러운 환경에서 여유롭게 쇼핑할 수 있어서, 판매 직원들의 서비스가 만족스러워서, 교환이나 반품이 수월해서….
다양한 이유를 생각할 수 있지만, 이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다른 유통채널에 비해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쇼핑이 가능하다’는 것이 소비자가 백화점을 찾는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쇼핑’이란 상품의 품질을 비롯해 쇼핑 환경과 판매 직원, 교환이나 반품 같은 문제 해결 등에 대해 백화점이 소비자의 기대 수준을 충족시킬 것으로 믿는다는 의미다. 이런 믿음이 있기 때문에 소비자는 다소 비싼 가격을 기꺼이 지불한다. 예를 들어 백화점 식품관에서 과일을 구매한 소비자는 ‘다른 곳보다 가격이 다소 비쌀 수 있지만, 백화점 과일이라서 품질이 만족스러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비자 신뢰는 ‘인지적 신뢰’와 ‘정서적 신뢰’로 구분할 수 있다. 백화점에 대해 가지는 소비자의 인지적 신뢰는 상품의 품질 등에 대해 합리적 사고와 객관적 판단을 통해 신뢰하는 것이고, 정서적 신뢰는 판매 직원이나 백화점에 대해 소비자가 갖는 주관적 느낌, 감정 등을 통해 구축되는 신뢰이다. 두 가지 신뢰 모두 소비자가 스스로 해당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는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케이스스터디 기사에 따르면, 신세계백화점은 오랜 기간 형성된 소비자 신뢰에 기반해 온라인 기업들의 전유물 같았던 구독 서비스에 도전했다. 소비자 신뢰가 새로운, 낯선 도전에서 든든한 무기가 된 것이다.
신세계백화점은 2012년 ‘SSG 푸드마켓’을 오픈해 프리미엄 식품 매장을 국내에 도입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2014년 온라인 프리미엄 푸드마켓인 마켓컬리가 등장하면서 오프라인 프리미엄 푸드마켓이나 백화점 식품관에서만 볼 수 있는 상품을 온라인을 통해서도 소비자들이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다. 먹거리 구독 서비스 시장에는 마켓컬리를 비롯해 과일, 축산, 수산 등 특정 먹거리에 특화한 온라인 플랫폼들이 이미 신세계백화점의 경쟁자들로 자리하고 있다.
먹거리 구독 서비스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인 신세계백화점이 이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서두에 이야기 한 소비자들이 백화점을 찾는 이유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즉 ‘다른 유통채널에 비해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쇼핑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대해 그냥 백화점이 아닌 프리미엄 식품 매장을 갖춘 ‘신세계백화점’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도 한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질 좋은, 그리고 차별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소비자의 믿음이 형성될 때 소비자의 선택은 당연한 귀결이다. 어느 시장에서나 마찬가지로 먹거리 구독 서비스 경쟁에서의 승자도 결국 많은 소비자들로부터 인지적 신뢰와 정서적 신뢰를 확보하는 쪽이 될 것이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 한경닷컴에서 한경 CMO 인사이트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월요일 아침에 마케팅 콘텐츠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