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대그룹의 실세 중 한 명이던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사진)이 사기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코로나19 치료 효과가 있는 껌을 개발했다고 속여 투자금 수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형사3부(부장검사 김해중)는 최근 이 전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사기)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2020년 8월 “코로나19 치료 물질을 함유한 껌을 개발했다”고 속여 투자금 5억원을 받아냈다. 이렇게 챙긴 금액 중 1억6000만원을 네 개 차명계좌로 쪼개 송금해 숨긴 혐의(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 있다.
수사팀은 지난 8월 이번 사기 피해자로부터 고소장을 접수한 뒤 직접 수사해왔다. 이를 통해 이 전 회장의 사무실이 아무 인적·물적 기반이 없는 단기 공유 오피스라는 사실과 허위 내용이 담긴 사업계획서, “치료물질 특허 신청을 마쳤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 등 범행을 입증할 만한 여러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회장은 김윤규 전 현대건설 사장과 김재수 전 현대그룹 구조조정위원장과 함께 현대그룹의 마지막 가신 3인방으로 불린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오른팔로 평가받았을 정도로 당시 현대그룹의 핵심 실세로 꼽혔다. 그는 1969년 현대건설 입사 후 현대엔진 전무, 현대중공업 전무, 현대해상 부사장 등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 요직을 거쳐 1996년 현대증권 대표이사 부사장에 올랐다. 그 후 현대증권에서 3년 만에 회장까지 승진했다. 회장 시절인 1999년 주식형 펀드인 ‘바이코리아 펀드’를 출시해 초대박을 냈다.
그는 현대그룹이 유동성 위기로 채권단 관리 아래에서 구조조정에 들어간 2000년 9월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오랫동안 법정을 오갔다. 2003년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 주가 조작 혐의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확정받았다. 현대증권과 이 회사 주주들이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에 따른 벌금과 소액주주 피해, 현대중공업에 제공한 불법각서로 인한 피해 등을 배상하라”며 제기한 소송에도 휘말려 2010년 대법원으로부터 “400억원을 배상하라”는 확정판결을 받기도 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