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美화가 마크 로스코 다룬 연극 '레드', 붉은 캔버스 무대 관객들을 빠뜨리다

입력 2022-12-28 18:31
수정 2022-12-28 23:46
막이 오르면 소극장 전체가 붉은색으로 휩싸인다. 마크 로스코를 주인공으로 하는 연극에 딱 들어맞는 무대다. 극도로 단순한 색과 모양으로 추상 표현주의의 대표 화가로 불리는 마크 로스코는 연극 속에서 그의 조수 켄과 예술과 철학에 대해 뜨거운 논쟁을 펼친다. 붉은색은 ‘지적 혈투’의 종착점에도 있다. 두 사람이 대형 캔버스에 함께 그림을 그리며 화합의 장으로 들어설 때 사용했던 색깔이다.

최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개막한 2인극 ‘레드’(사진)는 러시아 출신 미국 화가 마크 로스코를 소재로 만든 작품이다. 1940~1950년대 활발하게 활동한 그는 거대한 화폭에 단색으로 사각형을 칠한 추상화로 잘 알려졌다. 연극은 영국, 미국 등에서 공연했고 2010년 토니상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 그해 최다 수상을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2011년 초연 후 다섯 번의 시즌을 거치는 동안 평균 객석 점유율 95%를 기록하는 등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2인극으로 주인공 두 명의 연기 호흡이 돋보인다. 1958년 미국 뉴욕의 씨그램 빌딩 레스토랑 벽화를 의뢰받은 로스코(유동근·정보석 분)가 얼마 뒤 돌연 계약을 파기하고 작품을 돌려받은 실화가 작품 배경이다. 그가 그림을 레스토랑에서 내리기를 결정하기까지의 고민과 갈등 과정이 가상의 조수 켄(강승호·연준석 분)과의 대화를 통해 그려진다.

두 사람의 토론은 마치 한 곡의 교향곡 연주를 방불케 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자의식에 사로잡혀 새로운 예술사조를 비하하고 거부하는 로스코와 그의 편협함을 지적하는 켄이 대립한다. 예술과 철학을 주제로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는 리듬을 타고 휘몰아친다. 이들의 토론이 닿는 메시지는 예술에 그치지 않고 구세대와 신세대의 대립이라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다만 미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 프랑스의 야수파 화가 앙리 마티스 등 다양한 작가의 화풍이나 예술관, 일화가 토론에 종종 인용된다. 여기에 니체의 철학까지 각종 현학적인 수사가 쏟아진다. 사전 지식 없는 관객은 공감하기 쉽지 않다.

소극장에 잘 어울리는 연극이다. 의도적으로 빛을 차단한 마크 로스코의 어둡고 쿰쿰한 화실에 초대받은 듯한 분위기다. 무대 위에서 로스코와 켄이 붉은 물감으로 대형 캔버스를 채우는 장면에선 관객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집중하게 만든다. 물감이 배우들의 작업복에 튀는 모습까지 관찰할 수 있다. 공연은 내년 2월 19일까지.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