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들이 모여 있는 서울 삼청동 팔판길. 이곳을 걷다 보면 한 건물 옥상 난간에 놓인 나무 의자(사진)가 눈에 들어온다. 다리 두 개만으로 겨우 중심을 잡은 의자 위엔 육중한 바위가 놓여 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그 아슬아슬한 풍경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시선을 빼앗긴다.
서울 삼청동 초이앤초이갤러리에서 열리는 이태수 작가(41)의 개인전 ‘그리고 시간이 멈추었다’는 이처럼 ‘진짜 돌로는 만들 수 없는 비현실적인 작품’으로 가득하다. 1층에 들어서면 보이는 ‘스톤 컴포지션 006’(2019)은 지름 1.5m짜리 거대한 돌이 공중에 떠 있는 작품이다. 무거운 돌을 떠받치고 있는 건 얇은 유리판뿐이다.
2층에 있는 ‘스로잉 스톤’ 연작도 마찬가지다. 하얀 콘크리트 벽면 곳곳에는 마치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돌들이 박혀 있다.
눈치챘겠지만, 모두 스티로폼으로 만든 ‘가짜 돌’이다. 이 작가는 스티로폼 안을 파낸 뒤 겉면을 ‘스톤 코팅’(돌처럼 보이도록 하는 소재를 뿌리는 과정) 처리하는 식으로 바위를 ‘창조’했다. 진짜 바위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실적이다. 난간에 걸쳐진 의자와 돌 모양의 ‘스톤 컴포지션 019’(2021)를 설치한 뒤 “위험하게 돌을 올려놓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민원을 수차례 받았다.
이 작가가 ‘재료의 반전’을 꾀한 건 고정관념을 뒤집고 싶어서였다. “조소를 배울 때 가장 많이 사용한 재료가 금속이었어요. 어느 순간, ‘무겁고 보관하기 어려운 금속을 왜 굳이 써야 하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료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남들이 하던 대로 했던 거죠.”
그래서 그는 금속, 돌 등 무거운 재료에 대한 상식을 깼다. 중력으로 인해 마땅히 땅에 붙어 있어야 할 것들을 공중에 띄우고, 넘어져야 할 것들을 아슬아슬하게 보이도록 고정했다. 재료의 반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념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다. 전시는 12월 31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