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1%다. 1998년(7.5%) 이후 가장 높다. 한국은행 총재는 ‘물가에 중점을 둔 통화정책 운용을 이어갈 것’임을 강조한다. 기준금리를 더 올려서라도 물가목표(2%)를 꼭 달성한다는 다짐이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8년간 소비자물가는 1%대에 머물렀다. 2021년 7월 돌연 6.3%까지 폭등했다. 인플레이션 구조에 지각변동이 생긴 것이다. 근본 원인은 소위 글로벌 공급망 훼손이다. 중국은 전 세계에 싼 제품을 공급해 글로벌 저물가 기조에 일조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따른 중국 대봉쇄로 ‘세계 공장’ 역할에 제약이 걸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공급망 훼손 주범이다.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2020년 5월과 비교하면 2022년 8월까지 100배 올랐다.
둘째, 기업의 재고관리 방식이 바뀌었다. 종전에는 ‘최적 재고 유지(just-in-time)’가 목표였다. 비용 최소화와 효율성 극대화를 지향했다. 지금은 ‘충분 재고 유지(just-in-case)’가 지상과제다. 유사시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주요 원자재 공급 차질 등이 불쑥불쑥 터져 나온다. 셋째, 국제무역 룰도 바뀌었다. ‘마음 맞는 국가(like-minded countries)’ 간 교역이 우선시된다. 미·중 갈등 심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새로운 현상이다. 비용이 아무리 싸도 우리 편이 아니면 구매 사절이다. ‘경제·안보’ 개념이 새 규칙으로 자리매김했다. 경제가 안보, 안보가 곧 경제인 시대다. 이 모든 것은 한결같이 생산비용을 높인다. 기후변화, 탄소중립 관련 논의도 제조업 생산단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물가 오름세가 1~2년 내 끝나지 않고 상당 기간 계속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1970년대 석유파동 위기가 5~10년쯤 계속된다고 각오해야 할 판이다.
세계와 한국 경제의 체질이 바뀌는 일대 전환점이다. 통화정책 운용방식도 방향 수정이 불가피하다. 구체적으로 물가안정목표 리셋이다. 오늘날 세계 표준이 된 물가안정목표제는 뉴질랜드 중앙은행이 1990년 최초 도입했다. 한국은행은 1998년 뒤따랐다. 목표치는 정부와 한은이 2~3년마다 조정한다. 그런데 한은이 목표를 달성한 경우는 50% 정도에 그쳤다. 못 지킨 까닭은 한마디로 뒤를 보면서 앞으로 달리기 때문이다. 이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 목표를 수정한다. 성공하기 힘든 구조다. 한은은 왜 ‘2%’ 목표를 금과옥조처럼 끼고 있을까. 하필 미국과 동일한 수준일까. 설명이 필요하다.
요즘 인플레이션 목표를 3~4%로 올리면 경제에 이득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인플레이션이 4% 정도는 돼야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대응이 쉽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의 주장이다.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올리비에 블랑샤르는 적정 인플레이션 수준을 3~4%로 본다. ‘2% 목표’가 절대 양보하지 못할 신성불가침은 아니다. 이 목표를 지키려다 경기가 불필요하게 곤두박질할 수 있다. 감기약은 의사 처방전을 지켜야 한다. 5일 치를 받으면 중간에 나았다고 느껴도 마지막까지 먹어야 뒤탈이 없다. 문제는 감기약에 포함된 항생제다. 3일 치면 충분한데 5일 치를 다 먹으면 몸이 망가진다. 인플레이션 목표도 마찬가지다. 3%면 적당한 것을 2%를 고집하면 경기 침체 장기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인플레이션 목표를 올리자는 주장을 경청할 때다. 중앙은행이 가장 위에 둬야 할 목표는 ‘국민의 삶’이다. 중앙은행 독립성과 신뢰는 노력에 대한 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