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서 싸우는 장수의 말 대신 멀찌감치서 뒷짐지고 있는 관료의 말만 듣는 겁니까.”
양향자 무소속 의원(사진)은 23일 여야가 반도체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현행 6%에서 8%로 높이는 수준에서 합의했다는 소식에 이렇게 말했다. 세수 감소를 우려하는 기획재정부의 논리에 밀려 현장에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는 기업들의 목소리가 외면당했다는 의미였다. 양 의원은 국민의힘 반도체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이른바 ‘반도체 특별법’ 개정을 주도해왔다.
반도체 특별법의 한 축으로 양 의원이 대표발의한 조세특례제한법은 반도체 등 국가첨단산업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20% △중견기업 25% △중소기업 30%로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안 논의는 국가 예산을 총괄하는 기재부의 반대에 부딪혔다. 양 의원 안이 통과될 경우 2024년 법인세 세수가 2조6970억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류성걸 국민의힘 기획재정위원회 간사는 통화에서 “행정부가 대기업에 20%까지 세액공제를 해 주는 여당안이 과도하다는 부정적 의견을 지속적으로 내왔다”며 “여야 간 협의로 정부가 제시한 △대기업 8% △중견기업 8% △중소기업 16% 안을 받아들이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양 의원은 이날 별도 입장문을 내고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는 25%”라며 “(여야가 합의한) 8%는 전진이 아니라 후퇴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한국에서 쫓아내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25%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어떤 기업이 한국에 공장을 지으려고 하겠느냐는 것이다. 양 의원은 “세액공제 8%로의 후퇴는 지난 대선 공약을 파기하는 수준”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반도체업계에서도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세액공제 비율이 최소 두 자릿수까지는 오를 것으로 기대했지만 ‘보여주기식’ 논의에 그쳤다”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기존 구도가 계속되는 것이어서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반도체는 전략적 가치가 있음에도 경쟁 국가에 비해 혜택이 적다”며 “전쟁에서 무기 만드는 돈을 아끼는 격으로,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에 굉장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재연/정지은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