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전 적자, 금융시장 위기로 번지지 않길

입력 2022-12-23 17:28
수정 2022-12-24 00:27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국제 천연가스 가격은 폭등을 거듭했고, 8월까지 2020년 5월 대비 100배 올랐다. 이런 국제 가격의 폭등은 올해 하반기 전력생산 원가를 작년보다 200% 이상 뛰게 했다. 그에 비해 정부가 올린 전기요금 수준은 20%에 불과하다. 밑지고 장사해서 살아남는 기업은 없으며 그런 기업은 망하는 게 정상이다. 전기요금 문제는 원가를 반영하지 않고 소매요금을 올리지 못하게 한 기획재정부와 정부의 책임이며, 이제 결자해지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국회에서 한전 채권발행 한도를 늘려달라는 법안이 더불어민주당의 반발로 부결됐다. 한전은 요금으로 보전받지 못하는 연료비를 채권을 발행해 조달하고 있는데 채권발행 한도가 자본금과 적립금의 2배에 묶여 있고, 이 한도가 거의 다 찬 실정이다. 채권발행 한도를 늘려주지 않으면 한전은 발전사에 지급할 발전연료비를 줄 수 없고, 이러면 발전사는 연료 조달이 불가능해 발전소 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이렇게 극단적인 일이 발생한다면 결국 대정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그 손실은 기업체와 시민들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현재 한전의 문제는 한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 시장만의 문제도 아니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연결돼 금융권으로까지 위기가 옮아가는 모양새다. 한전이 원가를 전기요금으로 받지 못하기 때문에 채권을 발행해 그 이자까지 미래 소비자에게 전가하면서 그 짐을 떠넘기고 있다.

소비자들이 이를 안다면 지금 당장 원금을 내고 이자를 내지 않겠다고 할 것이다. 지금 내가 사용하고 지급하지 않은 전기요금은 남이 결국 떠안든가 정부가 일반 국민의 세금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전기를 많이 사용할수록 요금은 적게 내고 남이 그 요금을 부담하는 이상한 세상이 돼가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한전의 적자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전채 발행을 5배로 늘린다고 해도 내년에 10배로 또 늘려야 하는 법 개정을 해야 하므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더 나아가 한전 적자를 충당하기 위한 한전 채권의 무분별한 발행은 국내 중소기업 회사채 시장을 말라붙게 만들어 중소기업과 심지어 대기업의 자금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PF 부실이 동시에 불거지면 부동산 PF 자금을 대출한 제2금융권으로 전이되고 결국 1금융권까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도미노처럼 위기가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루빨리 요금 인상 시그널을 국민에게 전달해야 한다.

유럽은 전기요금이 올라서 다들 수요 절감에 목숨 걸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혀 그런 위기감을 느낄 수 없다. 전기요금을 포함한 공공요금이 국제가격만큼 오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의 에너지 절감 분위기와 너무나도 다른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트리와 기업들의 외벽 광고는 값싼 전기요금이 조장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액의 10%만 절감해도 약 5조원의 도입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무역수지도 개선할 수 있다.

한전의 재무적 적자는 전기요금 문제를 한참 넘어서 금융시장 위기로 번지고 있고 경제위기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전기요금을 정상화해 시민과 기업들에 가격 상승 시그널을 전달하고 수요 절감과 에너지 효율화에 나서도록 해야만 다가오는 경제위기로부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