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의 행실은 문지방을 넘어서지 않는다.’ 조선시대 양반 여성의 삶을 표현한 문장 가운데 하나다. 여성은 집안에서만 지냈고, 여성의 목소리는 집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아야 좋은 것처럼 여겨졌다. 부인의 역할은 ‘내조’라는 표현으로 남편을 돕는 부차적 지위에 머물렀다. 여성이 주체가 된 기록은 드물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까지 지워진 것일까? 최기숙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의 <이름 없는 여자들, 책갈피를 걸어 나오다>는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양반 여성들의 본모습을 소환한다.
저자는 양반가문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실증적 자료를 통해 반박한다. 호칭, 아내, 노동, 문자, 생명 정치, 평판이라는 여섯 개 키워드를 중심으로 삶의 실체에 접근한다. 양반 여성을 통해 이들이 관계 맺은 종, 기생, 첩, 무당, 양민, 궁녀 등 다른 신분의 여성에게도 접근한다.
최 교수는 조선시대 모범적인 여성상으로 ‘현모양처’라는 표현이 쓰인 적은 드물었다고 전한다. 오히려 남편을 돕는 아내 이상을 뜻하는 ‘현부’라고 했다는 것. 어머니와 아내를 넘어서 집안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종들을 은혜로 대하고, 이웃의 어려움을 헤아려 돌보는 등 다양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양반 여성은 노동으로 점철된 생애를 보냈지만, 이들의 품위를 위해 그 고통이 강조되진 않았다고 저자는 전한다. 빈부와 상관없이 양반 여성은 일생 동안 가사 노동에 시달렸다. 시부모와 남편에 대한 간병이나 육아와 같은 돌봄도 전담했다. 방적, 길쌈, 침선, 수예 등 손기술이 필요한 일을 많이 맡았다.
저자는 많은 조선시대 여성이 문맹이라 무지했을 거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여성의 한문 교육이 금기시됐지만 실제로는 여성의 독서에 관대한 집안이 있었다. 학식과 문학적 소양을 친족 교류 등을 통해 다양한 경로로 접했다. 문자를 모르더라도 듣고 외워서 교양과 지성을 내면화했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