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품은 DDP…한겨울 수놓은 빛의 향연

입력 2022-12-22 18:27
수정 2022-12-23 00:31

2014년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에선 주인공 쿠퍼(매슈 매코너헤이)가 블랙홀을 거쳐 시공간이 뒤섞인 5차원 세계에 도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미지의 공간’인 블랙홀을 빠르게 소용돌이치는 빛으로 연출했다. 강한 중력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비슷한 장면이 서울 을지로7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재연되고 있다. 서울시가 내년 1월 1일까지 DDP 서쪽 벽면을 무대로 펼치는 초대형 미디어아트 쇼 ‘서울라이트’(사진)다. ‘우주적 삶’이라는 올해 주제에 맞춰 엔자임, 자이언트스텝 등 여러 미디어 아티스트가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매일 저녁 7시에 222m에 달하는 세계 최대 곡선형 미디어 파사드(건물의 정면 외벽) DDP 벽면은 캔버스가 된다. 하이라이트는 3개 파트로 구성된 메인 쇼 ‘랑데-부’다. 빠르게 흘러가는 빛을 통해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주는 ‘여정의 시작’(자이언트스텝), 우주 비행사가 행성과 성운 사이를 유영하는 모습을 담은 ‘유니버셜 트래블러’(엔자임), 캐릭터 헬로맨이 다양한 행성을 탐험하며 친구를 만드는 여정을 그린 ‘헬로맨: 하트 비트’(범민)까지. 평면 스크린이 아닌 곡선의 벽에 흐르는 빛은 우주 한가운데 떠 있는 느낌을 관람객들에게 선사한다.

DDP라는 거대한 공간에 걸맞은 작품을 준비하는 건 작가들에게도 도전이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작품을 만든 엔자임 작가는 “DDP처럼 큰 화면을 AI를 활용해 채우려면 현재 가장 좋은 컴퓨터로도 턱없이 부족했다”며 “그래서 오랜 시간을 들여 작은 영상을 만든 뒤 해상도를 높이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관람객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작품이 달리 보이는 것도 서울라이트의 묘미다. 크리스마스 시즌(12월 22~25일)에 특별 진행하는 스티키몬스터랩의 ‘SML 크리스마스’는 각각의 캐릭터가 합주를 통해 재즈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방향마다 서로 다른 캐릭터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지철 자이언트스텝 대표는 “DDP는 인간이 볼 수 있는 가장 큰 스크린”이라며 “관람객들이 우주의 몇 십만분의 1이라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