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12나노미터(㎚, 1㎚=10억분의 1m) 공정을 활용하는 D램을 개발했다. 전력 효율이 높아 고성능컴퓨팅(HPC), 데이터센터 등을 주력 사업으로 하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수요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불황기에 기술력을 발휘해 경쟁사와 격차를 벌리는 삼성전자의 ‘초격차’ 전략이 결실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21일 업계 최초로 12㎚급 16Gb(기가비트) DDR5 D램(사진)을 개발하고 미국 반도체업체 AMD와 호환성 검증을 마쳤다고 발표했다. 12㎚는 반도체에서 전자가 다니는 회로의 폭(선폭)을 뜻한다. 좁을수록 반도체의 성능이 뛰어나고 크기가 작으며 전력 효율이 높다. 현재 SK하이닉스, 마이크론 같은 경쟁사들은 14㎚대에 머물러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멀티 레이어 극자외선(EUV) 기술을 활용해 집적도를 높였고 생산성은 20% 향상됐다”고 설명했다.
12㎚급 D램의 규격은 최신 ‘DDR5’다. 최대 동작 속도는 7.2Gbps로 1초에 30GB(기가바이트) 용량의 UHD 영화 2편을 처리할 수 있다. 소비 전력은 이전 세대 제품보다 약 23% 개선됐다. 삼성전자는 기후 위기 극복에 관심이 많은 글로벌 IT 기업들의 관심이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적인 중앙처리장치(CPU) 전문업체 AMD와 신제품 D램에 대한 호환성 검증을 마쳤다. 내년 본격적으로 양산을 시작해 데이터센터 업체나 인공지능(AI), HPC 전문 기업 등으로 납품처를 확대할 계획이다.
반도체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초격차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과거 반도체 불황기에도 꾸준한 기술 투자를 통해 고성능 제품을 계속 출시, 경쟁사와 격차를 벌렸다.
이주영 삼성전자 D램개발실장(부사장)은 “12㎚급 D램은 본격적인 DDR5 시장 확대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며 “차별화된 공정 기술력을 통해 개발된 이번 제품은 뛰어난 성능과 높은 전력 효율로 고객사의 지속 가능한 경영을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품 검증을 총괄한 조 매크리 AMD 최고기술책임자(CTO)는 “AMD의 젠(Zen) 플랫폼에서 DDR5를 검증하고 최적화하는 데 삼성과 협력했다”며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혁신을 위해서는 업계 파트너 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은 22일 글로벌 전략회의를 연다. 매년 6월과 12월 열리는 전략회의에선 사업 부문 최고 경영진과 해외 법인장 등이 참석해 내년 경영 전략을 논의한다. 이번 회의에선 본격적인 불황기에 접어든 메모리반도체의 생산·투자 전략과 AI·차량용 반도체 등 신사업 확대 계획,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경쟁력 강화 방안 등이 집중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