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 회계법인들이 금융당국의 품질관리 인력 요건 강화 방안 시행을 앞두고 대규모로 관련 인력 채용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중소형 회계법인에 관련 인력풀이 적은 데다 삼일 삼정 등 대형 회계법인 인력들은 중형 법인으로의 이동을 꺼리고 있어 구인난을 겪고 있다. 당국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회계법인은 한 단계 낮은 군(群)으로 강등되면서 상장사 등을 감사하는 데 제약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21일 한국공인회계사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등록회계법인 군 분류상 나·다군에 속하는 삼덕·한울·우리 등 중형 회계법인 10곳 안팎이 품질관리 인력 채용을 공고했다. 품질관리 인력은 회계감사 실무 부서와 의견을 조율하면서 감사 품질을 유지하고 관련 위험을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중형 회계법인들이 일제히 채용에 나선 것은 강화된 품질관리 인력 요건의 유예기간 만료가 3개월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제도가 시행되면 상장사나 대형 비상장사를 감사할 수 있는 등록회계법인 중 나군에 해당하는 중형 회계법인은 기본 품질관리업무 담당자 수의 140%, 다군은 120% 이상을 뽑아야 한다.
예컨대 공인회계사가 300명인 일반 회계법인은 기본적으로 6명의 기본 품질관리업무 인력을 두면 되지만, 등록회계법인 나군이면 여기에 3명, 다군이면 2명 이상을 더 유지해야 한다. 등록회계법인 중 가군은 자산 2조원 이상, 나군은 5000억~2조원 미만, 다군은 1000억~5000억원 미만, 라군은 1000억원 미만의 상장사 또는 대형 비상장사를 감사할 수 있다.
하지만 채용은 쉽지 않다는 게 중형 회계법인들의 설명이다. 다군에 속하는 한 회계법인 대표는 “계속 품질관리 인력 공고를 하고 있지만 다른 회계법인들도 한꺼번에 뽑고 있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품질관리 인력들은 삼일 등 빅4의 연봉 수준으로 맞춰주더라도 중형 회계법인으로의 이직을 원치 않는다는 분위기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대형에서 중소형 회계법인으로 가면 품질관리 시스템 세팅부터 새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형 회계법인에는 품질관리 인력 자체가 많지 않다.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시스템 때문이다. 독립채산제에서는 감사본부 등 각 부서가 실적을 올리고 이를 해당 부서가 가져간다. 돈을 벌어오는 부서 중심으로 각자 알아서 돌아가기 때문에 ‘공통 부문’에 해당하는 품질관리 부서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소형 회계법인이 부서별 성과에 치중해 감사 품질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던 것이 이번 구인난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내년 3월까지 품질관리 인력을 충원하지 못하면 나군 회계법인은 다~라군, 다군은 라군으로 하향된다. 기존 외부감사 계약은 유지되지만 기업들은 그 기간만큼 등급이 낮은 법인으로부터 감사를 받아야 하는 셈이다. 등급이 낮아진 회계법인은 이에 대비해 비용 절감 차원에서 감사 투입 인력을 줄이는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