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대기업·공기업 노동조합이 회계 자료를 행정 관청에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등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입법화에 시동을 걸었다. 노조의 회계감사자 자격과 열람 가능한 회계자료 범위도 구체화하기로 했다. 매년 수백억원대의 돈을 쓰면서도 ‘깜깜이’로 회계를 운영하는 노조의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與 “노조 깜깜이 회계 개선해야”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2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노조의 회계감사자 자격을 공인회계사 등 법적 자격 보유자로 규정하고, 300인 이상 대기업·공기업 노조는 회계 자료를 행정관청에 의무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행 노조법에는 회계감사자 자격에 대한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제3자가 아닌 회계 담당자가 ‘셀프 감사’를 해도 현재로선 위법이 아니다. 또 회계 자료 제출이 의무가 아닌 탓에 행정 관청이 노조의 회계 관련 문제점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었다. 회계 자료 열람은 공개 범위가 불분명해 노조 지도부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이뤄졌다.
이에 개정안은 회계 담당 직원을 감사 업무에서 배제하도록 했다. 노조원이 열람 가능한 회계자료 목록은 예산서·결산서 등으로 구체화했다. 하 의원은 “노조 깜깜이 회계제도가 개선되면 노조의 자치권과 단결권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 지도부도 노조의 ‘깜깜이 회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은 113만 명에 이르며 연간 조합비가 무려 17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며 “회사 측엔 투명한 회계를 요구하면서 자신들의 회계를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고 지적했다. 성일종 정책위원회 의장도 “영국은 노조 회계를 행정관청에 연례 보고하고, 일본도 노조법을 통해 적어도 매년 1회 조합원에게 회계 정보를 알린다”고 말했다.
○노동개혁 입법 ‘드라이브’
국민의힘은 이날 건설노조의 불법행위도 정조준하며 노동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성 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건설현장 규제개혁 민·당·정 협의회’에서 “건설 현장은 노조의 조합원 가입 강요, 금품 착취, 비노조원 출입 저지 등 불법 행위가 만연해 있다”며 “조직적 폭력 행위를 단속해 불법 행위를 엄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주무 부처 장관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건설 근로자 모두가 극소수 건설노조를 비롯한 일부 집단 세력의 볼모가 돼 있다”고 비판했다. 당정은 노조의 채용 강요 행위 등을 막기 위해 채용절차법 등도 개정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보도 참고자료를 통해 “현행 법제도에 근거해 노조의 재정 투명성 확보를 위한 관련 방안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당정이 노조를 향해 비판 수위를 높이는 데는 지지세 결집과도 관련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리얼미터가 12~16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41.1%로 5개월 만에 40%대로 재진입했다.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 기조가 지지율 상승을 이끌었다는 게 정치권 시각이다. 한 초선 의원은 “강경 대응 기조로 화물연대 파업을 막은 뒤 자신감이 붙은 분위기”라며 “건설노조에 대한 대응도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전했다.
양길성/맹진규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