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은 전문성과 정치의 조합이다. 구체적으로는 분석과 여론에 토대를 둔다. 수년 전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를 훼손한 것이 감사에서 드러나면서 정부의 탈원전정책에 결정적 타격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분석이 정책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드문 예라고 할 수 있다. 급변하는 국제지정학적 환경에서 국가의 스마트한 대응을 위해 어떻게 정책의 전문성을 극대화하고 또 그 한계는 어찌 극복해야 할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전문성은 개별학문의 다양한 가정과 전제하에서 논리적으로 구축된 분과학적 원칙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부분 전문성이 높은 사람은 당연히 답답하고 꽉 막혀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책 전반을 관료제가 결정하고 전문성은 보조적 역할만을 한다. 전문성은 관료제가 집단적으로 체득한 수준까지만 발휘된다. 자체적인 이해관계가 있고 몇십 년간의 안정적인 취업이 보장된 관료제의 입장에서 전문성은 매우 쉽게 취사 선택된다. 그 결과 정책과 전문성이 충돌되는 우리나라 특유의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첫째, 전문성은 개념의 연계이다. 스쿨존은 지역공동체가 지역의 여건을 고려해서 통학하는 아이들의 교통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협의하고 운영하는 과정이 핵심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자치단체나 경찰의 토목공사 사업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저 도로 바닥에 색칠하고 교통구조물을 설치하면 되는 줄 안다. 이에 더해 ‘민식이법’으로 운전자를 겁박하는 상황으로까지 왜곡됐다. 그러나 며칠 전 세곡동 초등생 사망 사고는 겁박이 통하지 않는 음주 운전자로 비롯된 것이다. 스쿨존은 있었지만 그 지역에 걸맞은 방법에 대한 협의와 장치는 없었던 것이다. 내년도 예산안에서 어느 부처에서나 발견되는 인공지능(AI) 관련 사업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전산화 내지는 데이터 저장업무에 AI 명칭을 붙인다. 시스템의 목적과 그 산출 그리고 개발과정에서의 다양한 문제점에 대해 아무런 의심이나 성찰도 없다.
둘째, 전문성은 객관성이다. 객관성의 토대는 데이터다. 그 데이터의 토대는 물론 통계다. 지난 정부 통계청의 미심쩍은 행태와 발표에 대해 감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사실 확인을 철저히 해서 책임 소재를 잘 가려야 한다. 이를 계기로 그간 논란의 여지가 있던 개념들과 측정 방법 등에 대해 광범위하고 다양한 토론을 창발시켜서 정부 통계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빅데이터 운운하는 것은 봄날의 꿈처럼 허무해진다.
셋째, 전문성은 공개와 피드백을 통해 향상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 가격 하락 우려 때문에 발표하지 못하는 연구 결과가 꽤 많다. 미세먼지나 상습 침수와 관련된 지도가 대표적인 예다. 측정과 분석작업이 완전하기 어려우니, 공개하고 또 다양한 피드백을 받아서 그 완전성을 높여야 한다.
국가정책의 고도의 전략성과 불확실성 차원에서 보면 전문성이 만능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전문성의 좁은 시야가 문제다. 엊그제 발표한 ‘제5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이 대표적인 예다. 화려한 지향이 나열돼 있지만 국가 생존과 융성의 여건과 미래를 깊고 충실하게 고민한 흔적은 잘 보이지 않는다. 과학기술정책을 집행하는 방식은 구습구태를 답습하는데 고도의 혁신과 도약을 할 수 있을까? 엊그제 언론에 흘러나온 항공우주연구원의 조직개편 잡음도 매우 이상하다. 이제는 우주 발사를 자체적으로 거의 하지 않는 NASA의 예를 들면서 정부조직을 확대하려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이 있는가 하면, 당연한 민간기업의 사업영역을 두고 정부나 공공기관이 유치한 땅따먹기 싸움을 하는 것 같은 인상이다.
환경이 너무도 빠르고 위중하게 급변하고 있으니 정책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깊은 숙고가 필요하다. 국가의 대부분의 정책은 국가안보에서부터 약자 보호에까지 모두 연관돼 있다. 더 이상 어느 한 부처의 고유한 사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하나의 정책에 대해 다양다기한 분야의 많은 분석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폭넓고 깊게 토론돼야 한다. 국가는 다양한 배경의 전문가들과 정책가들이 자유롭고 심층적으로 토론하는 방법과 절차와 훈련방식들을 개발해야 한다. 각종 전문성에 기반한 분석들이 흘러넘치는 지성의 플랫폼이 돼야 한다.